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더 아픈 손가락과 덜 아픈 손가락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우연히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으나
정말로 자다 깨서 우연히 듣게 된 것처럼 자의로 들은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듣지 못했다면 더 좋았을 이야기니까.
대화의 주체는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였다.
어째서 그런 대화를 나누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형제 중 누가 제일 좋은지에 대한 대화를 하고 계셨다.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누군가 그런 질문을 던졌겠지.
(그래서 나는 엄마아빠 중 누가 더 좋은지 같은 류의 질문을 싫어한다)
비교적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이때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그때 당시 이 대화를 듣게 된 것이 상처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짐작하겠지만 세 사람 중 나를 고른 사람은 없었다.
엄마가 먼저 대답했는데
엄마는 ‘그래도 첫 아이라 그런가’ 하며, 첫째를.
아빠랑 할머니는 차례대로 아들을 골랐다.
우리는 삼형제고, 세 사람이니까 한 명쯤은 나를 골라 줄 줄 알았다.
만약 대답하는 순서가 달랐다면,
할머니가 먼저였다면, 그래서 할머니가 아들을 선택했다면 아빠는 중복을 피하려고 첫째를 골랐을까.
그러면 엄마는 마지막에 동정심에서라도 나를 골랐을까.
(할머니는 순서가 어찌 되었든 아들이었을 테니까)
이 이야기를 들은 건 초등학생 때였다.
우리 집은 할머니가 아들을 그렇게도 원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참 힘든 시집살이를 하셨다고.
엄마는 첫째 아들을 유산하고 첫째 딸을 낳았다.
그리고 그다음에도 아들을 낳았지만 낳자마자 잃었고
그다음에는 딸인 나를 얻었다.
딸인 언니와 나를 낳고는 산후조리 같은 걸 못한 건 둘째치고
바로 제사 준비 등 집안일로 바빴다고 한다.
그렇게 결국 막내아들을 낳고는
겨우 며칠 조금 쉴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내가 태어났을 때는
딸이라는 걸 알고 아빠가 실망하여 집을 나갔었다고 한다.
(지금 들어도 많이 서운하지 않은가?)
그래서 성인이 되어 아빠와 술을 마실 때 아빠한테 사실을 확인했다. 정말이냐고.
(아니길 바랐다. 사실이 와전된 것이길)
그런데 아빠가 얼렁뚱땅 웃어넘기려는 것이 아닌가.
사실이었나 보다.
미안해하는 아빠를 보고는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서운함이 조금 풀렸다.
그래도 미안해하시니까.
그렇게 아들을 원하던 집안 분위기는 상상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맛있는 반찬은 모두 동생 앞으로 놓였고,
할머니는 남동생을 주방에 얼씬도 못하게 하며
언니와 나에게만 집안 심부름을 시켰다.
우리 언니는 고분고분한 첫째여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왜 더 가까이 있는, 놀고 있는 동생은 시키지 않는지
왜 동생은 주방에 오면 안 되는지 물었다.
당연히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었고,
나는 싫은 건 싫다고,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나를 시키면 보란 듯이 동생을 시켰다.
어른들이 보기엔 말대꾸하고 반항한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반항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할머니와 나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자주 부딪혔다.
고분고분한 며느리와 착한 아들 사이에서 어쩌다 나 같은 게 나왔는지 하셨을 거다.
할머니가 내게 욕도 참 많이 하셨었지.
(할머니가 안 계신 지금은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가 나이 들어 노환으로 누워 계실 때 삼 형제 중 할머니를 가장 챙긴 건 나였다.
(나는 마음에 쌓아두고 담아두는 성격은 또 아니라서 부당한 대우가 싫은 거지 할머니가 싫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정말 간과했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동생이었다.
나중에 동생과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했는데, 동생이 망설이다가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은 정-말 속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라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어릴 때 할머니와 나 사이에서 본인이 얼마나 눈칫밥을 먹었는지 아냐고.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 했다.
마치 주마등처럼 어릴 때 기억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었는데 이번엔 내가 아닌 동생이 주인공이었다.
그땐 보이지 않던 동생의 모습만 클로즈업되어 보였다.
할머니가 동생만 챙긴다는 이유로 내가 할머니에게 대들고 있을 때
그걸 동생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 반찬 좋아한다고 할머니에게 대들 때에도
동생은 반찬을 먹지는 못하고 맨밥만 깨작거렸고
왜 가까이에서 놀고 있는 동생에게 시키지 않고 멀리서 다른 일을 하는 나를 불러다 시키느냐고 대들 때에도
동생은 어중간한 거리를 두고
어디 가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
동생이 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동생에게 눈치를 주려고 의도한 적도 없었다.
그냥 할머니의 사고방식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할머니랑 나와의 부딪힘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있는 동생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몰랐다. 동생이 성인이 되어 그 이야기를 할 때까지도.
아마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어도 동생에게 가해자가 된 셈이다.
나보다 어린 동생이 받을 상처는 생각하지 못했다.
동생에게 정말 미안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하다.
동생이 잘못한 것은 없는데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줬던 것 같아서.
그리고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오늘 황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집 현관문을 열어 두었는데
어떤 점쟁이가 문 앞에 와서는 가족사진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현관문 앞에 서면 우리 가족사진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작은 딸이 속 썩일 거“라고
마치 나만 문제라는 듯이.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나한테 그 말을 전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말에는 힘이 있다.
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
나를 최애로 여기는 사람이 없는 이 집안에서
고분고분하고 착실한 첫째와 막내와는 달리
나는 좋은 말로 자유분방하게,
쉬운 말로는 열심히 놀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아마 부모님도 알았겠지.
아니, 엄마는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엄마가 열심히 감추고 감싸줬을 것 같다.
아빠가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놀지는 못 했을 것 같으니까.
20살 성인이 되어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더 자유분방하게 놀았다.
그리고 딱 21 살이 될 무렵부터 나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덜 아픈 손가락이라고 생각했다.
애정 결핍이었을까.
그래서 더 못나게 군 걸 수도 있다.
어쩌면 단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는 말은 그렇게 했을지언정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 없었을 텐데,
어릴 때 나는 그 말속에 갇혀 살았던 것 같다.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집이 아닌 밖에서, 다른 곳에서 사랑을 갈구했던 것 같다.
할머니도 종국엔 나를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도 이제는 안다.
그땐 나도 많이 어렸으니까..
그래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치고는
나름 바르게 잘 자란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사랑을 모자라게 받지는 않았던 거다.
어릴 때 들었던 그 말들이 내 눈을 가려
내가 보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