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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서움

by 김종현

기억은 참 무섭다.

얼마전 인천 신포시장을 갔다왔다.


나는 서울 신림동에서 태어나 지하 단칸방에서 살다 큰아버지가 계신 인천 아파트 바로 앞 빌라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처음에 가난하셨다. 그 빌라도 힘겹게 얻어 갔는데 바로 앞 놀이터에서 내 나이또래 애들과 놀러다녔던 기억은 종종 있다.


사실 인천은 나에겐 애증의 도시다.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해맑게 뛰어다녔다. 시장에 가면 꼭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갔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내게 "먹고싶은거 있어? 사줄게"라고 했는데 내가 없다고 했다. 이전에도 시장에만 오면 계속 나에게 먹을것을 사줘서 하루는 안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없는 형편에도 아끼고 아껴 자식한테 하나라도 더 사주셨던 것을 20년이 지난 성인이 되서야 알게 됐다.



한번은 정말 큰일날뻔한 아찔한 경험을 했다. 나는 잘 기억 안나는데 어머니랑 큰어머니께서 명절에 모이시면 늘 내 앞에서 얘기해주신다.


인천 어디 시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랑 손을 잡고 시장을 갔다. 잠깐 내 손을 놓고 물건을 보는 사이 내가 감쪽같이 사라졌고 어머니는 온 시장을 뛰어다니며 나를 찾았다. 사방팔방 다 다녀도 없어서 큰어머니께 연락드리고 바로 인천경찰서에 미아 신고를 했다.


한참을 찾아도 무소식이어서 어머니께서 울먹이실때 큰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나를 찾았다며 경찰서로 오란 전화에 어머니는 한걸음에 바로 달려갔다.



큰어머니는 내가 그때 무슨말 했는지 기억하냐며 묻곤 하신다. 내가 모른다고 하자 '종현아 어디갔었니. 엄마하고 내가 얼마나 찾았는줄 아니'라길래 해맑게 "큰엄마 여긴 제 친구에요"라며 옆에 따라온 아이를 가리켰단 것이다. 어머니도 큰어머니도 그때 얘기만 나오면 "너 진짜 순진무구한 표정은 아직도 기억난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으신다.


지금은 어엿한 29살이 됐고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ㆍ경영인과 만나며 경제ㆍ사회 현안을 묻고 기사로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됐다. 어렸을때 꿈만같이 느껴졌던 기업 스카웃 제의도 받아본 성인이 돼 부모님께 식재료를 사다드리는 자식이 됐다.


그 사이 인천은 명절 친척집이나 해수욕장 등 관광 목적이 아니고서야 찾지를 않았다. 그게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다. 마지막으로 신포시장을 방문한게 10여년 전이었다. 그땐 학업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단순히 구경만 하다 갔다. 친구랑 다니다 역으로 왔는데 별 감정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방문한 신포시장은 무언가 달랐다. 물론 10년전과 풍경도 달라졌지만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뛰어다니며 햇빛이 비추는 시장 입구에서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가는 그때 내가 느꼈던 행복감이 드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걸까. 그때 맡았던 인천 시장의 향과 냄새가 머리를 자극하는걸까.


마치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로 느껴졌다.


해맑고 순수하게 놀아. 어머니 손은 놓지 말고. 알았지. 꼭 행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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