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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Jan 14. 2022

한 끼 안 먹는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잖아요

나는 그날 점심으로 나온 카레가 정말 먹기 싫었다고요

 어릴 때부터 삼시 세 끼 꼬박 챙겨 먹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 않았다. 그저 배가 고프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한 끼 정도는 건너뛰는 식이었다. 물론 그 식습관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세 끼를 부지런히 챙겨 먹은 적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아침은 꼭 먹어야, 그것도 무언가를 씹어서 먹어야 공부가 잘 된다는 어머니 말씀에 졸린 눈 비벼 뜨고 겨우 숟가락을 들었다. 이상하게 점심 식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저녁 식사는 야간 자율학습을 버티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고등학생 시절 3년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하루 세 끼가 아닌 두 끼가 전부다.


 어머니는 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선생님으로 계셨다. 나는 이 어린이집에서 최고참인 일곱 살, 어머니는 그보다 어린 반을 맡으셨다. 거의 온종일을 교실 안에서 보내다 보니 생각보다 서로 마주칠 일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 퇴근보다 하원 시간이 훨씬 빨랐으니, 결국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나 붙어 있었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집 밖의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하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날 전까지는.


 하루는 점심으로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나는 조리실과 가장 가까운 교실에 있었기 때문에 식사 시간 전부터 솔솔 풍기는 맛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독 그날은 입맛이 없었다. 아무것도 입에 넣고 싶지 않았다. 차마 목구멍으로 삼키지 못하고 뱉어낼 것만 같았다. 앞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카레라이스를 보니 이제는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속이 메스꺼워지는 기분이었다.


"저는 안 먹을래요."


 숟가락으로 의미 없이 밥알만 데굴데굴 굴리던 나는 어느새 입술이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선생님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그 당시만 해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라는 가르침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먹기 싫은 것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입맛이 없었다. 속이 메스껍다 못해 목구멍으로 신물이 올라왔다. 먹네 안 먹녜, 선생님과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식탁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로 도망치듯 몸을 구겨 앉으면 선생님은 기어코 나를 제자리로 데려와 앉히셨다. 과한 친절로 손에 숟가락까지 쥐어 주고서.


 그러나 이에 질세라, 나는 곧장 숟가락을 놓고서 울음을 터트렸다. 주변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반짝이는 시선을 살필 틈은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눈을 거칠게 닦으며 교실을 뛰쳐나왔다. 평소에는 마주칠 일도 없던 어머니가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무엇이 필요했는지 교실을 나오셨다. 울고 있는 나는 당황한 표정을 한 어머니 앞에 마주 섰다.


"엄마, 나 점심 먹기 싫어."


 어머니께서 한 가지 일러두신 게 있었다. 혹시라도 어린이집 안에서 어머니를 마주친다면 그때는 엄마라고 하지 말라고. 선생님이라고 하라고. 그마저도 떠올릴 여력이 없었다. 나는 그저 어머니에게 투정 부리고 싶은 일곱 살이었던걸. 어머니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에서야 아차 싶었다. 이러다 혼나겠다, 선생님이라고 안 부르고, 고집까지 부렸어. 눈을 가린 손을 뗄 자신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기분이 어떠셨을까.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데 그런 내가 펑펑 울고 있다면. 정말 다행히도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조용히 나를 달랜 후 교실로 들여보냈다. 그때 어머니께서 선생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결국 나는 다 식어버린 카레라이스를 두 숟갈만 먹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지금도 그다지 입맛이 돌지 않을 때 누군가 먹을 것을 강요한다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아침, 점심, 저녁,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식사 시간이 되었더라도. 의도적으로 굶는 것은 아니다. 편식이 심한 편도 아니다. 정말 배가 고프지 않아서 먹지 않을 뿐이다. 배가 고플 때는 나름대로 든든하게 이것저것 챙겨 먹는다. 일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도 없다. 고칠 생각도 없지만. 건강에 크게 이상이 없기 때문에 안일한 생각을 하는 걸까? 정답을 모르겠다, 아직은.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어머니께서는 훗날 이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달라진 점을 말씀해 주셨다.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먹을 거야?"를 두어 번 물어보고 안 먹는다고 하면 "알겠어, 그럼 치운다"를 한 번 말한다고 한다. 억지로 먹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간 어린이집 급식과 관련된 안타까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다행이네."


 일곱 살의 나처럼 그날따라 입맛이 없을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해 준다는 게.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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