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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Jan 20. 2022

잃어버린 코코아를 찾습니다

20년이 넘도록 못 찾고 있거든요

 적당히 따뜻한 맑은 날씨. 이따금 뭉게구름이 하늘을 헤엄치고 있었다. 우리 집은 2층짜리 단독주택의 2층이었다. 1층은 주인 아주머니댁이었다. 나는 내 키의 반절되는 계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물 머금은 빨래를 줄줄이 널고 있었다. 간간이 빨래의 포근한 향이 은은히 풍겼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유유자적이다. 내 나이 네 살 때의 일이다.


 주인 아주머니와는 사이가 돈독했다. 이 공간의 유일한 꼬마인 나를 손녀처럼 대했다. 내가 그 높은 계단을 네 발로 기어 열심히 오르내리고 있으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아주머니를 보면 앞으로 고꾸라지도록 인사를 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서, 계단에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가, 코코아 마실래?"


 나는 통통한 볼 사이 입술을 헤 벌린 채 눈을 깜빡였다. 코코아가 뭐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끄덕끄덕. 그럼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라며 아주머니는 마당을 나섰다. 이윽고 내게 돌아와서는 작은 종이컵을 건넸다. 그 안에는 빛바랜 고동색을 띠는 코코아라는 것이 담겨 있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히 마셔야 해. 조금씩."


 아주머니 말씀을 명심하며 나는 두 손 꼭 쥔 종이컵을 후후 불어댔다. 그리곤 한 입. 와! 이게 뭐지? 진한 단맛에 우유의 고소한 맛까지. 그리고 끝에 아주 살짝 느껴지는 초콜릿의 쓴맛, 하지만 기분 나쁜 쓴맛은 아닌. 빨래를 널던 어머니께서 뒤를 돌아보더니 맛있어?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난생처음 느끼는 맛. 네 살 인생 가장 최고의 맛이었다.


 그 후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마신 코코아보다 맛있는, 아니 그만큼이라도 되는 코코아를 마셔본 적이 없다. 어느 코코아를 마셔도 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크면서 단맛을 좋아하지 않도록 입맛이 바뀌었음에도 가끔 그날의 맛을 떠올리고 싶어 코코아를 마셨다. 거의 모든 브랜드 제품을 섭렵했지만 역시나 그 맛은 없었다. 어머니는 그 어릴 적 일을 기억하냐며 놀라곤 하셨다. 게다가 그날의 상황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어지간히 맛있었나 보다."


 어머니는 말했다. 그것은 흔한 자판기표 코코아였다. 다만 그때 마신 코코아가 내 인생 첫 단맛이었기 때문에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고 한다. 아기 음식은 간이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정말 재료 그대로의 맛이 전부니까. 그런 것만 먹다가 내 딴에는 자극적인 맛을 느꼈으니 아직도 잊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날의 코코아도 나에게는 짙은 추억의 맛이다. 아마 죽기 전까지 그 맛은 다시 느끼기 힘들 테다. 어떤 코코아를 마셔도 그때 그 맛은 아니네, 라는 생각이 앞설 것이다. 그래도 긍정적인 한 가지가 있다. 지금의 내가 마시는 코코아는 추억 매개체이다. 언젠가 코코아를 마실 때면 나는 잠시 네 살로 돌아가 그날의 기억을 그린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하늘, 그날의 냄새까지. 코코아 한 잔에 담긴 추억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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