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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Apr 21. 2022

어머니 가슴 철렁하게 한 아이의 직진 본능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보려는 걸까

 어머니는 말했다. 손을 놓는 순간 아이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아주 찰나의 순간에도 아이들은 쏜살같이 달려 나가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참 신기한 것이, 그건 어느 아이들이나 똑같다. 즉 아이의 본능이다. 걸음마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행동반경이 급격히 넓어진다. 이제 두 발로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요리조리 움직이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호기심이 피어오르기도 할 테다.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를 통해 들은 아찔한 에피소드가 있다.


 내 나이 두 살 무렵. 걸음마를 떼고 짧은 두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일 때였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은행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ATM기기 앞에 섰다. 자, 여기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슬슬 눈치챘을 테다. 어머니는 통장정리를 하면서도 손을 내내 잡고 있었다. 그러다 나에게 "여기 있어, 어디 가면 안 돼."라고 말하고는 아주 잠깐 잡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짧은 다리로 어딜 그리 바쁘게 달려갔는지. 어머니 말씀으로는 단 몇 초만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머릿속이 하얘져서는 당장 창구로 달려가 도움을 구했다.


"제가 아이를 잃어버렸는데요."


 온몸에 털이 쭈뼛 서고 심장이 저 밑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은인이 나타났다.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어떤 아이가 2층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던데, 혹시 잃어버린 아이가 맞을까요?"


 어머니는 부리나케 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절이나 되는 큰 계단을 힘겹게 기어오르고 있었단다. 그것도 엉엉 울면서.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낑낑거리며 올라가는 나를 붙잡았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때 그 심정을 절대 잊지 못하는 어머니는 이야기에 몰입할 때면 아이고, 하며 놀라곤 하셨다. 한 번도 어머니께 말씀드리지는 못했으나 혹시라도 미안함, 혹은 자책감이 남아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아찔한 상황이기는 했어도 잘 해결되었으니. 물론 그러한 감정을 덜어내든 비워내든 감히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전적으로 어머니 마음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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