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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설명서

효도 설명서: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라는 그 말

by GOLDRAGON

이번 달만 벌써 두 번째다. 가까운 친구 녀석들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각각 돌아가셨다.
재작년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부쩍 친구들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있다. 장례식장에 가면 그곳만의 특유의 공기가 있다. 생의 마지막을 거쳐가는 장소인 만큼, 엄숙하고 차분하다. 침통함과 애통함이 감도는 그 자리에 조문객으로 함께 앉아 있어도, 그 가족들의 고통을 우리가 감히 보듬을 수 없음을 알기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런 자리에 가면 친구들이 꼭 똑같이 전하는 말이 있다.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잘해드려라."

그 말은 어쩌면 수십 번 들어온 흔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부모님을 떠나보낸 이들이 전할 때, 그 말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번엔 그 말이 마음속 깊이 박혔다.

잘해드린다는 건 도대체 뭘까.
심적인 위로일까, 물질적인 보답일까.


사실 나는 아직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정정하신 모습,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시는 생활 덕분에 그런 상상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감사한 현실에 살고 있는 셈이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동네 앞 개천을 하루도 빠짐없이 걸으신다. 아버지는 꽤 오랫동안 헬스클럽을 다니시며 근력운동을 해오셨다. 지금도 웨이트 머신에서 꽤 무거운 무게를 올린다고 자랑삼아 말씀하신다. 나는 늘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말리지만, 아버지는 그 무게가 곧 당신의 건재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여기시는 듯하다.

그런 부모님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효자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불효한 자식이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고분고분한 성격도 아니고, 막내지만 애교도 없고 퉁명스러운 말투에 다혈질적인 성격 탓에 본의 아니게 엄마에게 상처를 드렸던 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몇 날 며칠을 마음에 품고 괴로워했던 기억도 난다.

세월이 흐르며 부모님도 달라졌다. 말투, 행동, 판단력이 예전과는 조금씩 달라졌다. 인지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괜히 욱하고 화를 낸 적도 있다. 그러고 나서 또 며칠을 자책하며, 괜한 말을 했던 순간을 되돌아보곤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가정에는 오래전부터 크고 작은 위기들이 있었다.

가장 가까이는 작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존재는 여전히 부모님이었다. 반백살을 앞둔 내가, 팔순을 넘긴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부끄러웠다. 평소 자랑스럽게 여겨졌던 아들내외의 위기 앞에서 부모님은 한동안 외면하셨다. 아니, 외면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도움을 주셨다.
그때는 나도 서운했지만, 지금은 그 상황 자체를 만든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고 화가 난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나는 오히려 손을 내민 것이었다.

내가 자식으로서 철없이 응석 부릴 나이인가.
한 가정의 가장이며, 부모가 된 내가.
그런데도 위기의 순간, 부모님은 내게 여전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분들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양가 부모님 모두 살아오신 날보다 살아가실 날이 더 짧은 나이가 되었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여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장례식장에서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했던 말.
그 말이 오늘은 마음속에 너무 선명하게 맴돈다.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잘해드려라."


도대체 잘해드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꼭 대단하고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드리는 일, 얼굴 뵙고 식사 한 끼 나누는 일,
예전과 달라진 말투를 참아주고 받아들이는 인내,
손 한 번 꼭 잡아드리고, "사랑해요"라는 말 한마디 전하는 것.

말은 쉬워도, 실천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마음이 식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
어색하더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고 싶다.
살면서 한 번도 꺼내보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을
이번엔 진짜 용기 내어 전해보고 싶다.


나는 여전히 효자도 아니고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가끔씩 엇나간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게 남아 있는 시간 안에서
부모님께 진짜 '잘해드리는' 아들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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