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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하늘에 핀 백장미

28년 전 오늘 난 일만, 이만, 삼만을 헤아렸다

by GOLDRAGON

*[일만-이만-삼만-산개검사-산개불량-백장미개방-착지준비]-자동 산개 시까지의 3초 대기후 낙하산 오작동일 때 보조낙하산을 펼칠 시 외치는 구호와 매뉴얼.


97-7607**** 1997년 9월 25일.

이 숫자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 군번이자,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입대일자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나는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최근까지 기억했던 총번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이 군번만은 떠나지 않는다. 기억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왜일까. 군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매년 이맘때가 되면, 그 선선한 공기 속의 특유의 냄새가 나를 그날의 논산으로 다시 데려간다.
나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입대해, 훈련소에서 비교적 쾌적한 날씨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걸로 위안이 되진 않았다.


로망과 현실 사이

내가 입대할 그 시기 TV에선 훈련소와 군생활을 그린 드라마가 인기였다.

심지어 '군대 로망'이라는 말도 있었다. 또한 IMF의 그 해, 많은 또래들이 오히려 군대를 피난처처럼 여기고 자원입대를 택할 정도였다. 나 역시 친구들 중에서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입대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가 되었다.

군생활중 에서의 기억은 두 가지로 또렷하다. 하나는 논산훈련소,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수전학교다.

논산훈련소. 빨간 모자, 나무침상, 그리고 동기들

25연대 10중대.

지금은 '육군훈련소'라는 이름이 익숙하지만, 지금의 군대와 그 시절의 논산은 사뭇 달랐다.
군기가 곧 법이었고, 빨간 모자를 눌러쓴 교관들은 인간이라기보단, 군기 그 자체였다.

"훈련소 상담 시간에는 무조건 다 잘한다고 해! 그래야 편한 곳으로 자대배치받는다."
입대 전에 전역한 선배들이 해준 조언이었다.
나는 그 말을 고스란히 믿었고, 무엇이든 잘한다고 했다.

체육 전공, 태권도 4단, 남들보다 뛰어난 체력. 체력측정 시 죽을힘을 다해 1등급 기록.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 모든 기록들은 결국 특전사 자대 배치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은 일반병사를 착출 하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훈련소에서 사병들도 특전사로 착출을 했었다. 내가 원한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여정이었다.

논산에서 특전사로

훈련소 수료식 날, 대부분의 동기들이 더블백을 둘러메고 각각의 기차에 탑승하여 전국 각지의 부대로 향했다.
하지만 나와 몇몇은 논산 역사 플랫폼에 남겨졌고, 기차를 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이동했다.

어디로 이동하는지도 모른 채 도착한 곳은 '학교'라고 불렸지만, 그곳은 다름 아닌 [특수전학교]였다.
말 그대로, 특전사로 배치된 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옥의 관문'이었다.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5주

그곳에서 우리는 5주간의 공수기초훈련을 받았다.
낙하산 강하 4회를 통과해야만 진짜 특전사로 인정받는 구조였다.
훈련은 상상을 초월했다. 논산훈련소는 이곳에 비하면 마치 놀이동산 같았다고나 할까.

하네스(낙하산장치)를 메고 교장을 영원의 굴레에 빠진 듯이 무한 반복해서 돌고, 끝없는 선착순에,

인간 극한의 공포 높이라고 하는 수십 미터의 막타오(모의 낙하 장치)에서 끊임없이 뛰어내리고,

착지 시 충격을 분산시키기 위한 낙법을 반복 훈련했다. 나는 2주 차에 발목을 삐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부상을 알리면 퇴교되고, 일반 보병으로 전출된다.
모든 훈련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 동기 중 한 명은 11월의 강추위에 후송이 필요할 만큼 감기몸살로 끙끙 앓았지만,
마찬가지로 참았다.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이 모든 지옥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우리는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지옥의 끝, 낙하 강하

드디어 마지막 주. 강하 주간이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실제 공수 강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C-130 허큘리스 수송기], [CH-47 치누크 헬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구] 강하. 모두 이전까지 영화에서만 보던 것들이었다. 경기도 성남 비행장에서 마주한 압도적인 크기의 위용과 자태에 그저 얼어붙어 화장실만 가고 싶었다.

"강하 3분 전!"

시끄러운 비행기의 모터소음소리에 넋이 나간 상태로 이끌려온 강하지점. 이때부터 기체 안에는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린다. 사이렌 소리와 교관의 외침,
앞사람의 방탄헬멧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치며 강하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의식,
그리고 개방되는 문.

거대한 구름이 비행기 안으로 스며든다. 창공은 어두컴컴하며 무척 공포스럽다.
"지금 이건 꿈인가?" 나는 저항 없이 그 속으로 점프했다.


절대고요의 찰나

강하 순간, 낙하산이 펴지고
나는 '망망대공' 위에 떠 있었다.

이러한 적막함은 이전에 느껴본 적이 없다.
어떤 기체음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혼자 떠있는 듯한 고요함.

하지만 그 낭만은 잠시.
착지 순간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지면과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해 고개를 아래로 내리면 안 된다.
땅이 올라오는 듯한 착시 때문에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 착지 시 골절, 혹은 심하면 하반신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앞꿈치와 무릎과 허벅지를 이용해, 옆으로 굴러 착지.
지옥에서 배운 기술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기구 강하-진짜 공포의 정점

가장 두려웠던 강하는 기구 강하였다.
열기구처럼 생긴 기체에 4명씩 탑승, 3000m 상공까지 수직 상승 후 낙하하는 방식. 치누크 헬기강하 역시 비슷하다. 낭떠러지 절벽에서 밑으로 떨어지듯 뛰어내리는 느낌이랄까.

비행기 강하는 비행하는 속도로 인해 점프 직후 곧 낙하산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지만,
기구 강하는 300미터가량 수직낙하로 떨어지는 순간의 느낌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게다가 기구는 지상의 크레인과 줄로 연결돼 있다. 기구에서 최대한 멀리 점프하며 강하해야 한다.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고 점프를 망설이며 떨어지다가는 기구 줄과 낙하산 줄이 엉키며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종종 가슴에 착용한 보조낙하산, 일명 [하늘의 백장미]를 펼쳐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 백장미는 하늘에서의 추락을 막아주는 절대 '생존의 꽃'이었다.


특전사의 휘장, 그리고 나

우여곡절 끝에 모든 강하를 무사히 마친 우리는 98-1차 기수로 휘장 수여식을 가졌다.

그때 받은 공수 휘장과 휘장증, 가슴에 날개가 달린 그 작은 마크는 일반 육군보병들은 착장 할 수 없는 특별함과 그 어떤 훈장보다 무겁고 자랑스러웠다. 이걸 위해 그렇게까지 교관을 증오하게 하며 내 맘 속 악받침의 끝을 보게 한 건가 싶었다. 지금은 모든 육군이 베레모를 착용하지만, 그 시절엔 검은 베레모와 낙하산 휘장만으로도 특전사라는 정체성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28년 후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어도, 가끔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꿈을 꾼다.

세상이 모진 훈련을 이겨낸 나를 길들이고 세상의 두려움 속에 나를 가두어놓았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한다면, 솔직히 자신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때의 내가 세상의 어떤 두려움보다도 강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인생의 고비마다
내 안에선 그 어느때보다 큰소리로 외친다. 우리만의 구호인 "안되면 되게 하라."


나는, '하늘에 핀 백장미' 특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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