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마의 마음 한켠에 남은 그날 저녁
5살이나 6살쯤이었을까.
우리 집엔 흑백텔레비전이 있었다.
그나마도 지대의 영향 때문인지, 아랫동네인 우리 집에선 안테나를 설치해도 채널이 몇 개 나오지 않았고, 그조차도 잘 나오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만 쥐어줘도 하루 종일 재미있는 영상을 볼 수 있지만, 그 시절엔 TV 자체가 귀했고, 나와도 볼만한 게 별로 없었다.
어린이 프로그램도 지금처럼 넘쳐나던 시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밖으로 나왔다.
뛰어놀고, 뒹굴고, 상상 속 전쟁을 치르며 하루를 보냈다.
그날도 동네 친구들과 장난감 칼과 방패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때였다. 윗동네에 살던 한 친구가 불쑥 말했다.
"우리 집에 가서 놀래?"
나는 고민 없이 "그래!" 하고 대답했다.
골목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지만, 친구 따라 새로운 공간으로 가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다.
세발자전거를 끌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정확한 구조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기억 속 그 집은 으리으리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컬러텔레비전이 있었다는 것.
그 집은 고지대에 있어서인지 여러 채널도 잘 나왔다.
눈앞에서 선명한 색으로 움직이는 만화영화를 보는 순간, 나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만났다.
친구와 나는 TV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영화를 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얘, 너 집에 안 가도 되니?"
친구 엄마의 말에 깜짝 놀라 창밖을 보니, 이미 어둑어둑 저녁이었다.
"엄마가 걱정하시겠다. 얼른 가서 저녁 먹어야지."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나는 세발자전거를 끌며 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시각.
우리 집은 난리가 나 있었다.
밖에서 멀쩡히 놀던 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이미 집에 들어왔어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무도 내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함께 놀던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뿐.
할머니, 엄마, 누나들... 온 가족이 집 앞에 나와 내 이름을 부르며 동네를 헤맸다.
엄마와 친하게 지내던 이웃 아주머니들까지 나서서 함께 나를 찾았다.
하나뿐인 아들이자 장손이 사라진 것이다.
엄마는 결국 경찰에 실종 신고까지 하셨다 했다.
그 시간,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또 얼마나 원망하셨을까.
그러던 중.
그런 난리가 났는지 알 리 없는 나는 저쪽 골목 끝에서 세발자전거를 끌며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 앞에 모여 있지?"
그게 내가 한 유일한 생각이었다.
나를 발견한 엄마는 달려와 나를 안으셨다.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그 품에서 나는 눈치챘다.
"아...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구나."
그런데도 엄마는 나를 야단치지 않으셨다. 엉덩이를 때리지도 않으셨다.
다만, 아주 나직하게 물으셨다.
"너 어디 갔었어, 이 시간까지 말도 안 하고..."
나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 ○○네 집에 가서 TV 봤는데... 걔네 집에 칼라TV 있어~"
한바탕 난리였던 가족들 앞에서 내 천진한 한마디는 아마 어이없음과 안도, 피식 웃음 같은 감정을 동시에 줬을 것이다.
퇴근 후에 돌아온 아버지는 상황을 전해 듣고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그 사건은, 내가 다섯 해를 살면서 엄마에게 드린 가장 큰 걱정이자 충격이었을 것이다.
얼마 후, 집에는 변화가 생겼다.
낡은 흑백 TV는 사라지고, 컬러TV가 들어왔다.
녹슬어 신호가 약하던 안테나는 치워지고, 더 높고 커다란, 마치 생선뼈처럼 생긴 최신형 안테나가 지붕에 세워졌다. 그 후 나는 다시는 윗동네 친구네 집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 집에서도 이제 만화영화가 선명한 색으로 나왔으니까.
그 일이 있고 약 3년 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해, 학교 운동회가 있던 날 엄마는 그날의 마음앓이에 대한 [작은 복수?]를 하게 되시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