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계절에 남은 대화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도르마무'라는 빌런이 등장한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존재지만, 주인공은 그를 <무한 반복의 시간 루프>에 가둔다. 끝나지 않는 같은 장면, 같은 대사, 같은 결말. 결국 도르마무는 지쳐서 항복한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대화도 그랬다.
마치 도르마무식 대화. 끝없이 반복되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루프.
누가 봐도 심플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답도 분명히 있는 문제였다.
지난 1년여 동안 우리 가정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모든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을 다 풀어낼 수는 없지만, 결국 우리의 논쟁과 심각한 다툼의 중심에는 가정의 경제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오랜 상의와 진중한 논의 끝에, 가정의 경제권을 남편인 내가 맡기로 했다.
서로의 급여는 가족 공용 생활통장으로 모으고, 신용카드는 한 장만 사용하기로 했다. 카드는 내가 관리했고, 아내는 가정에 필요한 지출이 있을 때 나에게 요청하면 내가 이체해 주는 방식이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각자 카드로 쓰는 것보다 지출은 줄었고, 생활통장을 통해 가정에 필요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투명하게 보였다. 숫자만 놓고 보면, 꽤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다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쌓여가는 '귀찮음'과 감정의 무게였다.
아내에게는 매번 금액과 목록을 정리해 요청하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을 것이다. '쓰는 사람'이 아닌 '요청하는 사람'이 된다는 감각은 자존심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무작정 통제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휴대폰 요금이나 렌털 제품처럼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만큼은 밀리지 않게, 청구서 금액을 미리 알려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 그래야 한 번에 큰 금액이 빠져나가는 일 없이 가정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부탁은 늘 "알겠다"는 말로 돌아왔지만, 실제로 바뀌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아내의 급여가 생활통장으로 들어왔는데, 평소보다 60만 원이나 적었다.
"왜 이렇게 적게 보냈어?"
"내 휴대폰 요금 밀린 거 한꺼번에 냈어."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이미 수십 번 이야기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야?"
"내가 매번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
우리는 결국 서로의 마음에 오래 묵은 말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말했다.
"내가 나를 위해 쓴 게 있는 줄 알아? 전부 생필품이고, 우리 가정을 위해 쓴 거야."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사치나 낭비를 할 우리의 가정형편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대화는 늘 그렇게 핵심을 벗어나 '삼천포'로 흘러갔다.
이런 대화 패턴은 낯설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시작점이 되든, 결국 우리는 늘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단지 "제발 밀리지 말게 하자"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밀리면 목돈이 되고, 그 부담이 또 다른 갈등이 되니까.
하지만 대화는 늘 이렇게 변했다.
"내가 언제 내 거 맘 놓고 산 적 있어?"
"당신은 하고 싶은 대로 다 쓰잖아."
답답했고, 숨이 막혔다.
결혼 16년 차.
아내에게도 불만이 없을 리 없고, 나의 모든 선택이 정답일 리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와 트러블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우리는 지금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조차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점에 서 있다.
때로는,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서로에게 덜 아픈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우리의 관계가 늘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좋을 때는 분명히 좋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상처를 주고받은 시간들이 더 오래 남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중학생인 딸아이는 우리 부부의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말한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보다, 너무 의연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프다.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될 나이에, 이미 많은 것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 같아서.
2025년의 끝자락,
우리는 계절만큼이나 마음도 차가운 겨울 한가운데에 서 있다.
도르마무는 결국 그 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복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모른다.
이 반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관계를 붙드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를 놓아주는 것인지를.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같은 대사와 같은 결말로 돌아가는
이 도르마무식 대화에서
무언가가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