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편을 쓰고서야 알게 된 것

글쓰기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까지

by GOLDRAGON

58편.
올해 4월, 브런치스토리에 작가를 지원했고 한 번에 등단(?)해서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게 됐다. 그 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써온 글의 숫자다. 계산해 보니 거의 매달 일곱 편씩은 꾸준히 써온 꼴이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쪼끔은 자랑스럽다.


돌이켜보면 나는 글과 아주 멀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 입시 때 논술에서 제법 높은 점수를 받았고, 글쓰기에 재주가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소 현실적이었다. 기억력 감퇴. 뇌 기능의 변화로 인해 유년 시절과 오래된 기억들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지금이라도 남겨두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했다.

처음의 글쓰기는 철저히 나만을 위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글은 단순한 유년시간의 기억 저장을 넘어섰다. 일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순간의 감정, 사건들, 그리고 나의 생각과 철학까지. 글의 스펙트럼은 점점 넓어졌다. 어떤 날은 힘든 마음을 털어놓는 고백이었고, 어떤 날은 누군가를 향한 질타였으며, 또 다른 날엔 사회를 향한 목소리이거나 지식의 창이 되었다.

글은 그렇게 내 일상이 되었다.
보고서처럼, 루틴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스트레스 출구가 되었다.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와 피로를 글로 녹여냈다. 브런치에서 만난 작가님들과 소통하며 위로를 받고, 조언을 얻고, 나를 외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글쓰기는 없어서는 안 될 내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며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흑백 같은 단면을.


나의 꿈이자 목표는 분명하다. 출간.
이곳에서 책을 내는 작가님들을 보며 부러워했고, 그 마음은 점점 확신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내 글이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좋아요 수가 늘고, 구독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때부터였다. 글쓰기가 일이 되고, 때로는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한 순간이.
처음에는 나를 비워내던 글이, 어느새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왜 내 글은 잘 읽히지 않을까.
왜 에디터는 내 글을 메인에 채택하지 않을까.
따로 방법이 있는 걸까. 아니면 진정성이 부족한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진심을 담는 글보다, 노출되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고 있었다. 글 쓰는 의미가 조금씩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는 나의 롤모델이 되어주는 작가님들이 있다. 그분들 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유익함과 진정성. 그래서 자연스럽게 많이 읽힌다. 나는 그 모습만을 좇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던 며칠 전,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창작자 정산센터>에서 소정의 금액이 입금되었다는 알림. 익명의 브런치 구독자 한 분이 내 글을 유료로 구독해 주신 것이었다.

금액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글에 '가치'를 매겨주었다는 사실.
그 감정은 감사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뇌리에 번쩍이는 충격이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처음으로 돌아왔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나 자신의 기록이자 일기였고, 나와 세상을 잇는 소통의 창구였다. 좋아요와 구독자 수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읽고도 표시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굳이 구독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내 글쓰기에 영향을 줄 이유는 없다.


나는 다시 다짐한다.
단 한 번의 조회라도 있는 한,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글들은 세상과의 약속이 아니라, 나 자신과 맺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조용히 읽고 지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마음에 담기만 한 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글은 원래 그렇게, 소리 없이 사람에게 닿는 것이니까.

이곳에서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누군가의 문장에 기대어 나 자신을 다독인다.
내 삶을 기록하며, 동시에 타인의 삶과 겹쳐지는 이 순간들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히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여기, 이렇게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묵묵히 남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