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루에 두 번의 코드 블루

생명의 끝에서 배운 것

간호학과 졸업을 앞둔 여름,

집 근처 작은 병원 응급실에서 운 좋게

Summer Nurse Extern을 하게 되었다.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까.

유난히 무더웠던 어느 날 오후,

병원 주차장에 사람이 쓰러졌다는 안내방송이 울렸고

응급실 간호사 두 명이 침대를 끌고 달려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처럼

달리는 침대 위에서 CPR을 하며 응급실로 들어왔다.


순식간에 여러 사람이 몰려들었다.

채혈하는 사람, 산소 주는 사람,

의사의 처방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사람,

그리고 이어지는 CPR…


처음 겪는 상황에 뭘 해야 할지 몰라

혹 방해될까 봐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뒷걸음으로 주춤주춤 나가려는데,

간호사 매니저가 내 이름을 불렀다.


"You, stay here and learn!"


그렇게 CPR을 돕고

환자 처치에 필요한 용품들을 가져다주며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는 결국 돌아가셨다.


합병증이 많은 고도비만 당뇨 환자였고,

병원에서 투석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심장마비로 쓰러지셨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싸움이었다.


같은 날,

나와 프리셉터가 함께 담당하던 할아버지.


아침부터 큰 소리로

자기 집에 언제 가냐고, 빨리 집에 가서 밥 먹어야 한다며

우리가 방에 들어가면 웃으며 농담도 하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이더니

어느 순간 코를 골고 주무셨다.

흔들어봐도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하시고

어느 순간부터 산소 포화도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싶어 프리셉터를 불렀는데,

프리셉터가 와서 깨우다가 또 코드 블루...


다들 몰려와서 필요한 처치를 하고

막 CPR을 시작하려던 순간,

가족과 통화하던 간호사가 소리쳤다.


"He is DNR!!"


CPR 준비를 하고 있던 내가 손을 멈추고

환자분 얼굴을 보았다.

낮에까지 웃으며 농담 건네던

할아버지의 파리 해진 그 얼굴…


DNR(Do Not Resuscitate)은

본인 또는 가족이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을 때

CPR을 하지 말라고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오랜 암 투병 끝에

가족과 본인이 선택한 평온한 마지막이었으리라.


하루에 두 번의 코드블루.


한 분은 끝까지 살리려 애썼지만 돌아가셨고,

한 분은 본인의 뜻대로 편안히 보내드렸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제일 힘든 일 중 하나가

내 감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잘 추슬러서 다음 환자가

내 감정에 영향받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적용시키려니 쉽지 않았다.


생명의 끝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간 그분들의 마지막 기억이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세 번째 스위스 여행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