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헤매는 소년.
작업실에 가는 길, 환승을 하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무언가 초조한 듯 허둥지둥 거리는 사람을 보았다. 지하철과 핸드폰을 이리저리 번갈아 보며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앳된 얼굴. 누가 보더라도 지하철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은, 이제 막 상경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어느 역을 가더라도 환승하기 편한 지점과 빨리 내리기 좋은 위치가 자동으로 인식되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이제 막 서울에 올라왔던 때에 느낀 지하철은 풀기 힘든 퍼즐 혹은 복잡하게 설계된 미로와도 같았다.
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본인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홀로 '출구 찾기 대모험'이라는 미니 게임을 진행하고 있을 때의 외로움. 그 고독함이 떠올랐다.
반대 방향으로 탄 줄도 모르고 자리가 났다고 좋아했던 모습.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개찰구 밖으로 나왔다가 요금을 두 번 결제했던 모습. 다른 출구로 나갔다가 다시 계단으로 내려와 출구 번호를 찾던 모습.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시골 청년의 처절한 지하철 분투기가 필름이 되어 머릿속 영화관에 상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도움을 줄 수는 없다. 모두들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은 야생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는 당장에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매번 위기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야생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다. 스스로 부딪히고 깨져봐야만 홀로 설 수 있는 야생처럼 지하철도 스스로 겪어야만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다.
소년이여. 부딪혀라. 반대 방향을 향하고, 요금을 두 배로 지불하고, 출구를 찾아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려라. 차갑도고 차가운 대도시 서울의 철마. 지하철은 그렇게 당신을 성장시킬 것이다.
이름 모를 소년에게.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