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금주 리뷰
길고도 길었던 1년 금주 챌린지가 오늘로 종료된다. 정확히는 379일로, 1년 하고도 2주가 지났다. 조금 더 길어진 데에는 나름에 이유가 있는데, 그 모든 이유를 전부 설명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그중에서 결정적인 이유 하나만 말하자면 러닝을 좋아하는 친구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10km를 달리기로 하면 딱 10km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그보다 몇 백 미터를 더 달렸다가 멈춘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정확하게 10km에서 멈추게 되면 마치 자신이 멈추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느껴지고 지금껏 열심히 달려온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1월 1일이 되는 때에 술을 마시면 마치 내가 그 순간만을 기다려 온 사람, 그러니까 그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 술을 마시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지금껏 참아왔다는 의미 있는 노력이 그 순간에 의미를 잃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달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1년이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무리가 좋아야 과정도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1월 2일에 술을 마시겠다고 다짐했다.(딱히 다를 게 있어 보이진 않지만)
근데 술은 뭐 혼자 먹나? 마실 사람 필요하지, 마실 상황 필요하지, 거기다 1년을 참았는데 아무 음식에 그냥 소주를 들이붓고 싶지도 않다. 좋은 음식점에서 좋은 술로 시작하면 얼마나 그림이 좋으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밀리고 밀리다가 오늘까지 금주 기간이 늘어나 버린 것이다. 뭐 그래서 얼마나 대단한 술자리 플랜을 계획했는가? <친구가 하는 밴드의 단독 공연을 보고, 대방어 집에서 소주를 마신다.> …. 딱히 대단할 게 없다. 맞다. 사실 대단히 다를 것 없는 그냥 보통의 술자리가 될 것 같다.
금주 기간 동안 술이 마시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대단히 고통스러웠느냐?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술을 마시지 않음으로 생기는 시간과 돈 그런 기회비용이 늘어나는 게 좋았다. 그런 이유에서 금주를 종료하는 것이 내심 아쉽다. 그런데도 종료를 결심한 것은,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반대급부를 청산하기 위함이다.
여름철 종로 거리를 가득 매운 야장집의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에 반주를 곁들이는 사람들, 주말 밤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느꼈을 어떠한 감정들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의식하며 살고 있진 않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내 안의 불만, 부러움, 시기심, 괴로움 같은 감정들을 외면하고 억누르다 보면 더 큰 화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해야 할까. 조금씩 압력을 조절해 주어야 유지되는 타이어처럼 내 감정에도 압력을 조절해야 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무절제하게 허리띠를 풀어버릴 생각은 없다. 2025년에는 음주가 허용되지만, 달에 2회로 제한한다. 또 6월과 11월은 금주 달로 지정했다. 정말로 반대급부 압력을 해소하는 차원에서만 음주를 할 계획이다. 따지고 보면 금주가 아닐 뿐, 절주 하는 것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잘 지켜질지 어떨지는 내년 이맘에 또 후기로 확인하시길.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정말 좋은 기분이 든다. 당장에는 불가능한 어떤 일도 언젠가는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든다 해야 할까. 부분적 전능감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마치 그렇다.
아무튼 오늘로 금주는 마지막이다. 술을 마시고 후기를 쓰는 것보다는, 마시기 전 지금까지 느낀 감정을 짚어본 뒤 정리하고 싶었다. 2025년도 술로 힘들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숨 쉴 구멍은 있다는 사실이 어딘가 위로가 된다.
그럼 술 마시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