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멍청함에 관하여
최선의 수를 눈앞에 두고도 늘 최악, 운이 좋으면 차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당신의 눈앞에. 그건 바로 나다.
아주 마음에 드는 팔찌를 만들었다. 만드는 순간에도 자꾸 애정이 가서,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름을 붙여주었다. 얼른 완성시켜 차고 다닐 생각에 신바람이 났다.
그런 마음이 화근이 되었다. 성급하게 마감을 한 것이다. 팔찌를 고정하는 고리가 아주 미세하게 짧았는데, 마감을 하던 당시에는 조금만 신경 써서 차고 다니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스스로의 판단력을 믿은 나의 판단이 매우, 아주아주 아쉽다. 아니 밉다.
때문에 팔찌는 이따금씩 팔을 감으며 흘러내렸다. 그때마다 얼른 팔찌를 고쳐 잡으며 당장 수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만든 이 팔찌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에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팔찌를 차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불안이 속삭였지만, 팔찌가 마음에 든다는 감정이 그것을 가렸다. 무엇보다 조금 뒤에 있을 친구들과의 자리에 팔찌를 차고 나가고 싶었다. 자랑도 하고 칭찬도 받고. 뭐 아무튼 그러고 싶은 마음 있잖아.
결과는 뻔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중에 새로 만든 팔찌를 잃어버렸다. 그게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자리를 옮기는 중에 팔에서 흘러 어딘가에 떨어진 것 같다.
도중에 사실을 알아차리고 팔찌를 찾으러 나섰지만, 찾지는 못했다. 친구들도 함께 나와 수색을 도왔지만 팔찌는 없었다. 수색이 끝난 지점에서 자리도 끝이 났다. 그게 정말 미안했다. 즐거운 시간이 나의 멍청함 때문에 제대로 된 마무리 없이 흐지부지 끝나고 만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택시부터 눈물이 났다. 스스로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똑같은 모양의 실수를 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경각심은 한 톨만큼도 가지지 않는 걸까. 기초부터 잘못 설계된 OS처럼, 적당한가 싶은 자리에서 늘 오류가 난다.
집에 들어와 신발도 벗지 않고 신발장 앞에 누워 마음껏 울었다. 그냥 마구 울어버렸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다가 주르륵 흘렀다. 막아 놓은 뚝에 물을 풀듯이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슬픔에 비해 눈물은 금방 멎었다. 나이가 들어서 인가 보다. 감정과는 다르게 뇌에서는 생존과 관계가 없는 불필요한 에너지에는 할당을 줄인다. 차갑다. 나의 뇌.
아무튼 그렇게 한바탕 청승을 부리고 나니 잠도 잘 왔다. 참 속도 좋다.
일어나자마자 해야 할 일은 어제 있었던 바보 같은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바보다.'라고 삼창 하고, 어제 일은 잊고, 다시 새로운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걸 인정해야 새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바보 같은 OS가 장착되어 있기에, 스스로가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침대에 누운 자리에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는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일어나야지. 오늘은 잘 살아봐야지.
나는 바보다. 나는 바보다. 나는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