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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을 땅으로 넣을 사람

전봇대와 전깃줄이 싫다.

by 이일삼

어릴 적부터 줄곧 가져온 생각인데, 나는 전봇대가 싫다.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전봇대 좋아해?라고 물으면, 좋아한다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전봇대를 만드는 공장의 사장쯤 되면 몰라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길 한구석 자리를 당연한 듯이 차지한 전봇대가 싫고, 거기에 복잡하게 널려있는 전깃줄이 싫다. 조금 걷는가 싶으면, 몇 보 못가 길을 막는 전봇대와, 하늘색이 유독 예쁜 날 카메라를 들면 예쁜 풍경에 신경질적으로 마구 선을 긋는 전깃줄. 아- 싫다.


한국에도 몇몇 도시는 경관을 위해 전깃줄을 땅 아래로 매립했다고 한다.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걸음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고, 탁 트인 시선이 기본값인 세상에 산다는 것은 어떤 아름다움일지. 예쁜 하늘을 볼 때, 눈에 걸리는 게 없다는 것만으로 다른 도시에서의 생활보다 질이 높은 삶이라 느끼지 않을지.


만일 내가 시장 선거에 나간다면, 전깃줄을 매립하겠다는 공약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겠다. 우리 모두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진 않지만, 매번 전깃줄에 의해 제대로 된 풍경이 아닌 절단되고 왜곡된 풍경을 보고 있다고.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미세한 스트레스가 분명히 누적되고 있을 것이며, 그것을 도시 차원에서 해결한다는 취지로 사람들을 설득한다면 어떨지? 별로인가? 흠흠.


내가 아니어도 좋다. 만일 그런 공약을 가진 후보가 나온다면 나는 그 사람의 선거 캠프에 들어가 누구보다 열심히 유세 활동을 도울 것이다. 아무도 이런 대표 공약을 내세울 리 없겠지만. 평행세계에 정치인으로 살고 있을 내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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