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가 허리 디스크, 전문용어로는 추간판 탈출증을 진단받은 해는 2010년대.
이때의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이 하는 한국의 3대 명절, 설날, 추석, 그리고 수능 중에 무려 수능을 앞둔 대한민국 고3이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학원에 갔다가 독서실에 들리는 일상을 챗바퀴처럼 돌던 9월의 그 어느 날, 나는 허리 통증에 몸을 일으키지조차 못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
그날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분명 학교는 가야 하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 일어날 수 없었고 그 즉시 정형외과를 찾아갔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내려준 진단은 추간판 탈출증. 난생처음 들어보는 아주 생소한 병명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기로는 내가 매일 하던 책상에 엎드려있기, 아빠다리하고 앉기 등이 나의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허리에 더 많은 무리를 주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다시 18년도 9월로 돌아가서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서 그저 약 먹고 매일같이 병원에 출석해서 받는 고작 30분 정도의 물리치료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고 수능을 2달 앞둔 나는 학원은커녕 학교조차 등교하지 못하기 일쑤, 그나마 등교한 날조차도 1,2교시만에 조퇴하기에 바쁜 일상을 보냈다.
모든 수험생이 그랬듯 수능을 망하면 인생이 끝나기라도 하는 듯 매일 침대에서 엉엉 울던 나를 지켜보던 엄마도 참.. 마음이 안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버티다가 보게 된 10월의 모의고사.
약이 나의 몸에 너무나 세게 작용했기 때문에 약을 먹으면 금방 잠에 들었던 나는 집중력을 위해 약을 먹지 않고 시험을 보았고 그렇게 국어, 수학, 영어까지만 본 후에 몰려드는 통증에 급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 당시에 한국사를 응시하지 못하면 성적이 안 나왔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나 대신 한국사 시험 OMR을 마킹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프고 서러워서 눈물 뚝뚝 흘리면서 걸어갔고.
그렇게 성큼 다가온 수능날. 역시 국영수까지만 버틸 수 있었던 나는 영어 시험이 종료된 후 급하게 약을 먹었고..
사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과학 탐구를 선택했지만 내가 문제를 푼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잠에 취해있었다.
불수능이었던 터라 국영수는 나의 평소 모의고사보다도 잘 나왔지만 당연히 과탐은 인생에서 처음 보는 등급을 받았고 결국 원하는 학과에 지원할 수 없었다.
이때의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고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인 것만 같은 마음에 "그냥 성적 맞는 대학 아무 데나 넣을게요." 라며 정말 아무 학과나 지원했고
그렇게 내 인생은 처음으로 내가 세운 계획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환점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