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무 학과나 지원하고 노트북을 닫아버린 그날,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좌절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도대체 내가 뭘 위해서 이때까지 공부했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니,
그때의 나는 내 몸상태는 생각도 안 하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재수를 하겠다고 무조건으로 우겼고 그런 나에게 몸상태를 생각하라고 반대하는 아빠의 태도는 정말 야속했다.
결국 아무렇게나 넣은 학과 중에 아무런 학과나 진학하게 되었고 나는 등록금을 내면서도 꼭 내가 원하는 학과로 가리라 다짐하며 호시탐탐 재수의 기회만을 노렸다.
그런데 첫 OT를 가기 바로 전날, 나는 쓰러졌다.
이 당시에 한 두세 번 정도 쓰러졌었는데 병원 진단은 미주신경성 실신.
고통을 너무 오래 참아서 역치에 다다르면 내 몸의 긴장도가 급격히 증가하며 원래 있던 저혈합과 합세해서 내 몸의 전원을 꺼버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오티에 갔고, 그때부터 매일매일 간단한 운동과 조금 아프면 바로 드러눕는 휴식을 반복하니 그래도 많이 나아진 허리는 내가 평범한 20살처럼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때만 해도 이 일은 그냥 내 인생에 한 줄 남을 해프닝,
딱 그 정도인줄 알았다.
그렇게 4년, 졸업을 6개월 앞둔 나에게 다시 디스크의 그림자가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