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3월, 설렘과 긴장 속에 시작된 초임 교사 시절의 일이다. 당시 옆 반에서는 상상도 못 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2시 반, 이미 그 반도 우리 반도 아이들을 모두 안전하게 귀가시킨 뒤였다. 아이들이 떠난 평화로워야 할 학교 운동장에서, 옆 반 선생님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학부모에게 머리채를 잡혀 흙바닥을 뒹구는 참담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성을 잃은 학부형은 교사의 머리채를 휘잡고 운동장을 휩쓸고 다녔고, 그 서슬 퍼런 폭력 앞에 학교는 순식간에 공포와 슬픔에 잠겼다.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한 아이가 친구를 꼬집어 작은 상처를 냈고,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보건실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때마침 보건 선생님이 자리에 계시지 않았고,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선생님은 눈에 보이는 빨간 소독약인 '아까정끼'를 직접 정성껏 발라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 번진 빨간 약을 본 학부모는 그것을 마치 커다란 상처나 낙인처럼 오해했고,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아이들이 모두 떠난 텅 빈 학교로 달려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렇게 심하게 교사에게 행동했으면서 다음날 아이를 다시 등원시키는 학부모, 폭행을 당했으면서도 그 아이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하는 교사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끝까지 교사로서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던 선생님의 뒷모습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 초보 교사의 눈에 형용할 수 없는 충격과 경외감으로 다가왔다. '교사란 저토록 처절한 순간에도 태산 같아야 하는 존재인가' 하는 무거운 질문이 갓 어른이 된 나의 가슴을 깊게 짓눌렀다.
그 참담한 광경을 지켜보며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그 경험은 38년 교직 생활을 지탱해 줄 커다란 가르침이 되었다. 아이에게 작은 상처라도 생기면 무엇보다 먼저 부모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정중히 설명하고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그리고 시각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빨간 약(당시 아까쟁끼라고 흔히 부름) 대신 하얀 연고를 사용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보 교사였던 나는 그날의 사건을 통해 학부모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교사의 작은 배려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픈 현장을 지켜보며 교사로서의 지혜를 하나씩 배워나갔다.
교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아이와 학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세심한 예술과도 같았다. 붉은 소독약 한 방울이 불러온 커다란 파장을 보며, 나는 매 순간 신중해야 함을 배웠고 그 가르침은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내 교육 철학의 뿌리가 되었다. 지금 돌아보아도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며, 그때의 아픔이 있었기에 더 깊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날의 운동장은 나에게 가장 혹독하면서도 가장 소중한 첫 번째 교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