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혁이에게 보내는 뒤늦은 편지
교직 생활의 초입, 서툴지만 의욕만은 앞섰던 4년 차 교사 시절의 일입니다. 서른여덟 해의 긴 여정 중에서도 유독 마음 한구석에 아릿한 통증으로 남아있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태혁이입니다.
태혁이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말을 하는 대신 늘 가만히 자리를 지켰지만, 제어되지 않는 침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려 목에는 언제나 두툼한 손수건이 매여 있었습니다. 한 시간만 지나도 손수건은 금세 흥건하게 젖어 들었고, 주변에는 특유의 침 냄새가 짙게 배어 나왔지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매일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겠다 다짐했던 저조차도 선뜻 다가가기까지 찰나의 망설임과 불편함이 스쳤던 것을 고백합니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늘 다정한 미소를 지으려 애썼지만 말입니다.
태혁이는 부모님과 떨어져 학교 근처 할머니 댁에서 지냈습니다. 연세 지긋한 시골 할머님의 손길은 세심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아침 새 손수건을 매어 보내주시는 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지, 태혁이의 옷은 늘 갈아입히지 않은 채 그대로였고 위생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할머니께 매일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유치원에서 갈아줄 여분의 손수건을 가방에 꼭 넣어 보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가슴 한편에 묵직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태혁이는 몸이 불편했을 뿐, 정신만은 누구보다 맑고 영특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때 내가 조금 더 부지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저를 붙잡습니다.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며 부탁만 할 것이 아니라, 교사인 내가 직접 옷을 갈아입히고 손수건이 젖기 전에 더 자주 바꿔주었더라면… 그랬다면 태혁이가 친구들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냄새가 아닌 온기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제가 그 징검다리가 되어주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아이의 맑은 눈망울이 나를 향할 때, 그 깊은 속마음을 조금 더 세밀하게 보듬어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때의 꼬마 태혁이는 이제 마흔 중반의 어엿한 성인이 되었겠지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저는 지금도 가끔 태혁이가 어디선가 젖지 않은 뽀송뽀송한 마음으로 환하게 웃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태혁아! 선생님이 미처 다 채워주지 못한 빈자리를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대신 채워주었기를, 네가 걷는 그 모든 길 위에 이제는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