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화려함 뒤에는 때로 부모의 품이 그리운 어린 영혼의 고독이 숨어 있곤 한다. 여섯 살 시진이도 그랬다. 맞벌이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 조부모님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자라던 아이. 번듯하고 잘생긴 얼굴 위에는 늘 부모를 향한 그리움이 짙은 안개처럼 시무룩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특히 월요일 아침이나 긴 연휴가 끝난 뒤면 아이의 우울함은 극에 달했다. 유치원 문턱을 넘지 않겠다고 떼를 쓰며 주저앉는 아이 뒤로, 어쩔 줄 몰라 하시던 조부모님의 곤혹스러운 얼굴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특별한 계기도, 연휴 끝도 아닌 평범한 아침이었음에도 시진이는 교실 바닥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한 번 시작된 울음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억눌러온 그리움이 터져 나온 것인지, 아니면 말로 다 못할 어떤 서러움이 아이를 덮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성급히 다가가지 않았다. 서툰 위로나 섣부른 달램이 때로는 아이의 감정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는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울고 있는 아이의 주변에서 묵묵히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며 자리를 지켰다. 한 시간이 훌쩍 넘었을 무렵, 거칠던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잦은 숨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그제야 낮은 자세로 아이의 곁으로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진아, 이제 다 울었니?"
뜻밖에도 아이의 입에서 짧고 명료한 "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일어설 준비를 마친 것이었다. 나는 시진이를 일으켜 세워 품에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유치원에는 시진이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 선생님이 계셔. 그러니까 이제 울지 않아도 돼. 시진이가 울면 선생님 마음도 너무 슬프단다."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시진이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더 이상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투정도 부리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도시의 유치원에서 자신의 울음을 온전히 수용 받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시간 넘게 소리 내어 울어도 야단치지 않고 기다려준 시간, 그리고 따뜻한 포옹과 함께 건네진 진심 어린 고백이 아이에게 확신을 준 것이리라. 이곳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안전한 울타리라는 것을 말이다.
매일 아침 즐겁게 유치원 문을 들어서는 시진이의 뒷모습을 보며 조부모님도, 멀리 있는 부모님도 비로소 한시름을 놓았다. 아이의 환한 미소로 시작되는 나의 하루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기분 좋은 울림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