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라는 숙제
새 학기 상담 때마다 부모님들께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뜻밖에도 교육 과정이 아닌 "우리 아이 생일 파티는 어떻게 해주시나요?"였습니다. 아이에겐 일 년 중 가장 소중한 날이고, 부모님에겐 가장 축하받고 싶은 날이라는 걸 알기에 초임 시절의 제게 이 질문은 참 무거운 숙제와도 같았습니다.
경력이 채 10년이 되지 않았던 시골 유치원 시절의 일입니다. 여덟 명 남짓한 아이들이 오순도순 모여 지내던 그곳에서, 저는 '생일 축하'에 대한 한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생일이 비슷한 두 아이의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좀 가져와도 되느냐고 물으셨지요. 좋은 마음으로 그러시라 했더니, 어머니들은 케이크와 정성 가득한 음식들을 한 보따리 차려들고 오셨습니다.
그날 교실은 순식간에 잔칫집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들이 직접 상을 차리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었지요. 병설 유치원이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님들 몫까지 챙겨오셨기에, 저는 심부름꾼처럼 그 음식들을 교무실에 가져다 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 마음을 씁쓸하게 했던 건 잔치가 끝난 뒤의 풍경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싹 싸서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 드셔보라는 말 한마디, 나중에 출출할 때 드시라는 빈말 한마디 없이 말이지요. 물론 제가 케이크 한 조각을 못 먹어서 서운했던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소란 속에 그날의 수업은 완전히 뒷전이 되었고,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져야 할 교실이 순식간에 외부인들의 잔치 공간으로 변질되어버린 현실이 아팠습니다. '학부모가 음식을 해 오는 날은 수업을 접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여러 방식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아서 하기도 하고, 분기별로 치러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모아서 하는 축하는 주인공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결국 '생일 당일'에 축하해 주는 방식을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거창한 파티 대신, 반 친구들이 주인공을 위해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서툰 글씨로 축하 메시지를 적어 선물로 건넸습니다. 비록 유아들의 놀이 시간에 약간의 지장이 가고, 글씨 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날 태어난 아이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특정 종교를 가진 가정에서는 개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으니까요. 크리스마스 행사 때 아이를 결석시키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저는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축제가 어떤 아이에게는 부모님의 신념과 충돌하는 곤혹스러운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오랜 고민 끝에 저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생일 축하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유치원에서는 따뜻한 축하의 말과 정성 담긴 작은 선물로."
한번은 유치원에서 파티를 안 해줬다며 크게 화를 내신 학부모님도 계셨지만, 저는 제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대신 연초에 미리 예산을 세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예쁜 선물들을 일 년 치 준비해두었지요. 생일날, 아이에게 "생일 축하해"라는 진심 어린 말과 함께 그 선물을 건네는 것으로 교사의 마음과 부모의 기대를 잇는 균형을 찾았습니다.
3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니, 그 소란스러웠던 생일 축하 소동들도 결국은 아이를 향한 넘치는 사랑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풍경이었습니다. 정답은 없었을지 몰라도, 교실이라는 공동체의 평화와 아이 한 명 한 명의 소중함을 모두 지켜내고 싶었던 그 시절의 치열했던 고민이 오늘따라 깊게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