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보육과 교육이 경계에서

농번기 시골 유치원의 봄날

by 바래

교직 생활 4년 차를 맞이하던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다. 당시 유치원은 지금의 만 3, 4, 5세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규 교육을 받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제 겨우 세 살 남짓 된 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엄마 한 분이 간절한 표정으로 유치원 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차림새와 눈빛에는 시골 마을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뙤약볕 아래 일손을 보태야 하는데, 정작 어린아이를 마음 편히 맡길 곳이 없었던 것이다. 유치원을 흡사 아이를 돌봐주는 '탁아소'처럼 생각하고 찾아온 그녀의 사정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죽 답답했으면 산더미처럼 쌓인 농사일을 뒤로하고 여기까지 발걸음을 했을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쳤다. 하지만 이내 냉정한 판단이 뒤따랐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영아를 정규 수업 중에 함께 돌보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유치원 아이들에게 온전히 쏟아야 할 교육의 집중도가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예기치 못한 안전사고의 위험도 간과할 수 없었다. 유치원은 단순히 아이를 맡아두는 곳이 아니라 엄연한 '정규 교육 기관'이었기에, 나의 교육적 소신과 책임감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거절의 뜻을 전했다. "정말 죄송하고 마음이 안 좋지만, 이곳은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곳이라 대상 연령이 아닌 아이가 함께 지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돌아서는 그 어머니의 무거운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생계를 위해 농기구를 잡아야 하는 손으로 아이의 손을 꼭 쥐고 가던 그 모습. 보육과 교육의 개념이 희미했던 그 시절 시골 마을의 풍경은, 38년 교직 인생의 초입에서 '교육자의 책임감'과 '삶의 고단함' 사이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워준 잊지 못할 봄날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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