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 11년 차, 익숙한 고향 땅으로 발령을 받아 돌아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한 아이들은 모두 여덟 명. 교실 안에는 올망졸망한 눈망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6명은 기존에 다니던 아이들이었고, 2명은 새로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시골 학교 특유의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던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일곱 살 현주였다.
현주는 또래 무리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쥔 '골목대장' 같았다. 친구들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은 물론이고, 교사인 나의 말에도 늘 가시 돋친 대답을 내뱉곤 했다.
"싫은데요."
"우리가 왜 그걸 해야 하는데요?"
"우리는 됐어요."
입버릇처럼 붙은 부정적인 말들은 아이의 주변을 단단한 성벽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그 벽을 어떻게 허물어야 할지 고민하며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보았다.
시골 학교의 소박한 즐거움 중 하나는 초등학교 형님들과 함께하는 쉬는 시간이었다. 2교시 마침종이 울리면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유치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합류했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형, 누나들이니 아이들에게 운동장은 곧 커다란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특별한 활동이 없는 날이면 나는 기꺼이 그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3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초등학생들이 모두 교실로 들어갔는데, 유치원 아이들만은 미동도 없이 교실 맞은편 운동장 한켠에 모여 앉아 있었다.
"얘들아! 이제 들어오자!"
멀찍이 서서 몇 번이고 소리쳐 불렀지만,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기류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아이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누군가는 난감한 듯 눈치를 살피고, 누군가는 반항적인 눈빛을 보내며, 또 누군가는 죄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교실로 아이들을 인솔해 들어온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여러 번 불렀는데, 왜 대답도 없이 앉아 있었니?"
무거운 침묵을 깨고 나온 아이들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현주가 들어갈 필요 없다고 했어요."
"현주가 이제부터 선생님 말 듣지 말고 자기 말만 잘 들으라고 했어요."
아이들에게는 다정하게 타이르는 선생님보다, 눈앞에서 서슬 퍼렇게 군림하는 일곱 살 현주의 권력이 더 크고 무섭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작은 교실 안에서 벌어진 소리 없는 반란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단호한 처방을 내렸다. 며칠간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보내지 않았다. 형님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창밖으로 들려올 때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갈망으로 일렁였다. 형님들과 너무 놀고 싶어 몸을 배베 꼬는 아이들에게 나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도 너희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고 싶어. 하지만 너희가 선생님의 약속과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선생님도 너희의 부탁을 들어주기가 참 곤란하구나."
내 목소리에는 실망감과 원칙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했다. 무리의 중심에 서서 아이들을 조종하던 현주도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현주의 진심 어린 사과와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아이들은 다시 운동장의 흙먼지를 일으키며 초등학교 형님들과 뛰어놀 수 있었다. 11년 차 교사에게 찾아온 이 작은 '정치 싸움'은, 아이들에게 규칙의 소중함을, 그리고 나에게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심리 지도를 다시금 공부하게 만든 소중한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