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병설 유치원 교사의 홀로서기

붉은 불꽃 대신 흐른 눈물

by 바래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의 ‘뒤뜰 야영’이 있던 날이었다. 전교생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시골 학교였지만, 아이들의 설렘만큼은 여느 대형 캠핑장 못지않게 뜨거웠다. 집에서 챙겨온 낡은 텐트며 고사리손에 들린 코펠과 음식 재료들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틈에서 전 교직원도 덩달아 바빠졌다.


당시 교실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딱딱하고 먼지 쌓인 마룻바닥뿐인 일반 교실과 달리, 그나마 따뜻한 온기가 돌고 편히 몸을 눕힐 수 있는 곳은 유치원 교실뿐이었다. 선생님들이 하룻밤 묵어갈 숙소로 유치원을 택했기에, 나는 내 집 거실을 치우듯 정성을 다해 교실 구석구석을 닦고 정리했다.


늦은 오후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짙은 구름이 학교 뒤뜰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고, 비 소식에 캠프파이어를 준비하던 선생님들과 행사를 총괄하던 교장 선생님의 얼굴에는 심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릴까 노심초사하며 모두가 예민해져 있던 그 무렵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껏 학교에서 열리는 캠프파이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서 아이들이 쏟아낼 웃음소리가 궁금하기도 했고, 혹여 유치원 교실을 쓰시는 선생님들께 더 도와줄 일은 없을까 싶어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지막까지 도울 일을 찾으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유치원 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여자 교장 선생님과 유치원 학부형이기도 했던 학부형 회장이 저녁 식사 준비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궂은 날씨 탓에 한껏 날이 서 있던 교장 선생님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해 꽂혔다.

“선생님은 도대체 여기 왜 남았어요? 집에 가요!”


교무실의 공기를 가르는 서늘한 언성에 당혹감이 밀려왔다. 당황한 내가 조심스럽게 이유를 설명했다.

“아, 교장 선생님. 오늘 선생님들이 유치원 교실에서 주무신다고 해서 교실 정리도 좀 더 해두고 싶었고요. 캠프파이어 하는 걸 한 번도 못 봐서 구경도 좀 하고 도와드릴 게 있으면 돕고 싶어서 남아 있었습니다.”

나름의 선의와 호기심이 담긴 대답이었으나, 궂은 날씨에 쏟아진 화풀이처럼 더 거센 화마가 돌아왔다.

“집에 가라니까! 왜 안 가고 있어!”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을 대하듯 쏟아지는 불호령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게다가 학부형 앞에서 아이 나무라듯 하시는 태도에 자존심도 상했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교실 바닥보다 더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을 추스르며 낮은 목소리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이미 퇴근 시간은 한 시간이나 훌쩍 넘긴 뒤였다. 서둘러 짐을 챙겨 교문을 나서는 길, 등 뒤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들뜬 함성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다. 운전대를 잡고 교문을 나서던 그때 갑자기 천둥번개를 치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짐과 동시에 시야가 자꾸만 흐릿해졌다. 결국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울었다. 11년 차, 적지 않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건만 그날의 서러움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날것 그대로 다가왔다.


병설 유치원이라는 조직의 특수성. 초등학교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 있지만, 유치원 교사는 늘 ‘섬’ 같은 존재였다. 업무도, 수업 내용도 다르기에 어느 정도의 소외감은 숙명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한 번도 스스로를 ‘남’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교사 친목회에서도, 학교 행사에서도 나는 늘 한 울타리 안의 식구라고 믿어왔기에 그날의 배제는 더욱 뼈아팠다.

‘그래, 유치원이 초등학교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갑게 식은 마음을 다독이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전체 직원의 마음을 보듬지 못한 관리자의 태도는 분명 상처였지만, 그 상처에 매몰되지 않기로 했다. 조직의 구조적 한계와 그로 인해 때때로 마주하게 될 외로움을 비로소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캠프파이어의 화려한 불꽃 대신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소속감이 나에게는 투쟁하듯 얻어내야 할 감정일지라도, 내 교실 안의 아이들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확실한 울타리가 되어주겠노라 다짐하며 서러웠던 그날의 밤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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