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마음의 숨구멍을 찾는 아이

by 바래

만나는 대상에 따라 행동의 변화가 생기는 아이들을 떠올리다 보니, 유독 가슴 한구석이 짠해지는 또 다른 아이가 생각난다. 그 녀석은 유치원에서 교사가 제안하는 모든 일에 일단 "싫은데요"부터 내뱉고 보는 아이였다.

"우리 같이 그림 그려볼까?" 하면 "싫은데요."

"이제 정리할 시간이야." 해도 "나 하기 싫은데요."


서른 명 가까운 아이들을 홀로 돌봐야 하는 교실에서, 사사건건 반대표를 던지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를 마주하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대체 집에서는 어떻게 하길래 저토록 고집스러울까' 하는 의구심을 안고 어머니와 상담을 나누던 날, 나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선생님, 그럴 리가요. 우리 애는 집에서 얼마나 고분고분한지 몰라요. 시키는 대로 척척 하고, 반대 의견 한 번 낸 적이 없답니다."

어머니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듣고 다음날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집에서는 엄마 말씀 잘 듣는다며?" 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엄마는 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집에서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해요."


그제야 아이가 유치원에서 내뱉던 그 수많은 "싫은데요"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이에게 집은 숨 막히는 긴장과 엄격한 통제가 지배하는 공간이었고, 반대로 유치원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믿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셈이다.


집에서 억눌린 자아는 유치원이라는 너른 마당에 나와서야 비로소 기지개를 켰다. 교사가 편안하고 따뜻하게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아이는 비로소 '싫다'는 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들었던 것이다. '만만하다'는 말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관계였을 것 같다.


어른에게도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숨구멍이 필요하듯, 아이에게도 마음껏 떼를 써도 무너지지 않을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집에서 엄마가 그토록 서슬 퍼런 잣대를 들이댄다면, 유치원에서만큼은 선생님이 아이의 삐딱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품어주는 '느슨한 품'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아이에게 전할 수 없었지만 그때의 그 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웃으며 그때의 내 마음을 말해주고 싶다.

"네가 '싫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곳에서만큼은 네 마음이 가장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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