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처음 들어온 지성이는 그저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였다.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탓인지 모든 행동이 아기처럼 서툴긴 했지만, 그 서툰 모습조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뻤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은 사연은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했다. 지성이 위로 대학생인 누나가 있는데, 사실 그 누나 바로 밑으로 2, 3살 어린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아이를 초등학교 고학년 때 사고로 잃고 난 뒤, 지성이가 뒤늦게 찾아온 것이었다. 지성이는 그 커다란 아픔을 딛고 태어난, 부모님에게는 목숨보다 귀한 늦둥이였다.
사실 만 3세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완벽히 알고 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이 유치원이라는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이상, 최소한 자기 이름이 적힌 곳에 신발을 넣고 사물함에서 제 물건을 챙길 줄 아는 독립심은 길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이가 유치원에 잘 적응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성이에게 글자를 '공부'가 아닌 '놀이'로 접근해주기로 했다. 아이가 연필을 쥐고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함께 재미있는 그림을 그린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준비물은 커다란 칸이 그려진 연습장이었다. 나는 종이에 가로세로 세 줄씩 그어 아홉 개의 큰 칸을 만들고 지성이와 나란히 앉았다.
"지성아! 우리 여기 얼굴 그리기 놀이를 해볼거야. 선생님이 먼저 그리면 지성이가 따라 그렬보자. 모자를 그리고, 그 아래에 동그란 얼굴을 그리는 거야."
나는 'ㅎ'을 쓰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했다. 지성이는 신이 나서 "모자, 얼굴!" 하고 외치며 삐뚤빼뚤하게 나를 따라 그렸다. 다음 날은 'ㅗ'를 그리며 "얼굴 밑에 목이랑 어깨를 그려줄 거야"라고 말했고, 셋째 날에는 'ㅇ'을 그리며 "그 밑에 엉덩이까지 그려보자"라고 일러주었다. 마침내 '홍' 자가 완성되자 나는 아이에게 이 글자가 지성이 이름의 첫 글자임을 알려주었고, 지성이는 유치원 곳곳에서 자기 이름의 '홍'자를 찾아내며 기뻐했다.
그다음은 '지'와 '성'을 그릴 차례였다. 나는 아이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성아! 오늘은 하늘에서 미끄럼을 타는 그림을 그려볼 거야. 자, 하늘에서 주르르르륵! 작은 미끄럼틀도 쭈르르!"
나는 'ㅈ'을 쓰며 미끄럼틀 타는 시늉을 했고, 지성이는 깔깔거리며 연필로 미끄럼틀을 그렸다. 다음 날엔 그 밑에 'ㅣ'를 그려 넣으며 "미끄럼 타고 내려오니 엄마가 서 계시네"라며 이야기를 붙였다. 그렇게 '지'자가 완성되자 아이는 유치원 구석구석에서 '지'자를 찾아내며 성취감을 만끽했다.
마지막 '성' 자를 쓸 때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지성이의 손과 팔, 그리고 엉덩이까지 그려 넣는 놀이를 며칠에 걸쳐 이어갔다. 마침내 '홍지성'이라는 세 글자가 아이의 손끝에서 온전히 피어났다. 지성이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을 무엇보다 즐거워했다. 매일 아침이면 연습장과 연필을 소중히 들고 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선생님, 우리 오늘도 그림 놀이 해요!"
아이가 자꾸만 자꾸만 연습장을 들고 오는 통에, 놀이는 지성이의 이름에서 멈추지 않고 쑥쑥 뻗어 나갔다. 엄마와 아빠의 이름, 누나의 이름, 그리고 하나 있는 동생의 이름까지 차례로 그림이 되어 연습장을 채웠다. 이름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주변 사물의 이름으로까지 번져나갔다. 지성이에게 글자 공부는 곧 선생님께 듬뿍 칭찬받는 행복한 놀이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같기만 하던 늦둥이 아들이 집에서 가족들의 이름을 쓱쓱 써 내려가자, 부모님의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읽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신기하셨을까.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시던 부모님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만 3세, 아직은 어리기만 하던 지성이는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갈 무렵 거의 모든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이름과 글자들은 더 이상 딱딱한 기호가 아니라, 선생님과 함께 그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아름다운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