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엄마라는 기적, 그 이름으로 다시 쓴 교직생활

by 바래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 틈에서 살아온 지 어느덧 15년, 내 나이 서른넷, 그 당시에는 조금 늦은 결혼을 했다. 남들의 아이를 돌보는 것이 직업이었지만, 정작 내 아이를 품고 싶은 간절함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은 커져갔고, 마침내 찾아간 병원에서 이런 진단을 받았다. "자연 임신은 힘들 것 같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마음 준비하시고 인공 수정을 시작해 보시죠."


자연 임신은 어렵지만, 인공 수정으로 임신 가능성을 확실히 높일 수 있다니 참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바로 그 달에 기적처럼 아이가 찾아왔다. 인공 수정을 예고했던 그 다음 달, 기다렸다는 듯 자연 임신이 된 것이다. 결혼 1년 10개월 만에 만난 생명이었다. 아이를 품고 있던 10개월은 내 38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축복이자 행복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 아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벅찬 감사함과 행복은 나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끌었다.

유치원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아이들 역시 누군가에게는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간절한 기다림과 사랑으로 키워진 보물들이었던 것이다. 모든 아이가 저마다 부모의 눈물겨운 정성으로 피어난 꽃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나니, 지난날 아이들을 대했던 나의 모습들이 떠올라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름 베테랑 교사라는 타이틀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교실에서는 수십 명의 아이를 능숙하게 돌보았고 학부모와 상담할 때는 아이 행동의 원인과 지도방법까지 걸림없이 잘도 이야기하던 나였던데 막상 내 아이 앞에서는 그저 모든 것이 서툴고 당황스러운 초보 엄마일 뿐이었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다 보니 객관적인 시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엄마의 수준은 아이의 연령 수준과 같다'는 말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아이와 똑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지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이를 향한 나의 사랑이 그만큼 깊고 본능적이었기 때문이리라.


이 뜨거운 모성애의 경험은 나의 교직 생활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전에는 그저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만 있었다면, 엄마가 된 후에는 그 마음 위에 한 층 더 깊은 진심이 쌓였다.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엄중히 물었다.


'만약 이 아이의 엄마가 지금 내가 아이를 대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어떨까.'


엄마가 보았을 때 가슴 아파할 일은 단 하나도 만들지 않겠다고, 오히려 내가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그 엄마의 마음이 행복과 안심으로 가득 찰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질문은 내 교육 인생의 확고한 기준이 되었다. 엄마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마치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아이들을 한결같이 소중히 대했고, 아이의 마음은 물론 그 아이를 믿고 보낸 엄마의 마음에도 결코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 매 순간 정성을 다했다. 그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니 아이들은 선생님을 더 많이 좋아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학부모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내가 직접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무언가를 잘 못 챙겨주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결코 아이에 대한 사랑이나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저 아이를 너무나 사랑해서, 혹은 피치 못할 형편 때문에 생기는 빈틈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는 엄마들이 어떤 상담을 해와도, 어떤 부탁을 하거나 준비물을 잊어도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애쓰고 계실까’, ‘오죽하면 저런 부탁을 하실까’하는 마음으로 학부모를 대하니 자연스럽게 깊은 신뢰가 쌓였다. 교사가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을 느낀 부모님들은 유치원을 전적으로 믿어주셨고, 그 신뢰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모두가 평온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결국 교사는 '오고 싶은 유치원', 아이들은 '가고 싶은 유치원', 부모님은 '보내고 싶은 유치원'이 되었고, 나의 유치원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더 행복해졌다. 내 아이를 통해 모든 아이 뒤에 있는 '엄마의 마음'을 읽게 된 덕분이다. 엄마라는 이름을 얻고 나서야 나의 교직 생활은 비로소 몇 단계나 더 깊어지고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기적처럼 찾아온 내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 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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