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아이들의 세상, 그 사이를 잇는 지혜

by 바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금 서둘러 출근한 아침이었다. 교실의 정적을 깨우는 것은 창문을 열 때마다 스며드는 상쾌한 공기와, 나처럼 일찍 등원해 곁을 지키는 현호의 발소리뿐이었다. 복도 창문을 하나씩 열며 하루를 준비하던 그때, 복도 끝에서 보배 아빠가 보배의 손을 잡고 급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그의 굳은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선생님, 현호라는 아이가 누구입니까? 어제 현호가 우리 보배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애가 자다가 경기를 하더라고요. 도대체 어떤 아이인지 제가 직접 얼굴 좀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에는 자식을 향한 안쓰러움과 상대 아이에 대한 원망이 가득 서려 있었다. 마침 현호는 바로 옆 교실에 있었다. 아버님의 서슬 퍼런 기세로 보아, 현호가 마주하게 될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좋은 소리가 오갈 리 없었고, 자칫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물론 현호가 장난기 많은 아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유 없이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 또한 아니었다. 아이들의 다툼이란 늘 양쪽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고, 분명 서로 주고받은 감정의 파편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배 아빠의 눈에는 현호는 그저 내 아이를 울린 '나쁜 아이'일 뿐이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현호만 일방적으로 야단을 맞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상황이었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부드지만 단호하게 말을 건넸다.

“아버님,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파악하고 있고, 어제도 말씀을 나누었지요. 오늘 현호에게는 제가 다시 한번 엄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마침 현호 어머니께서도 제게 전화를 주셨어요. 보배가 어떤 아이인지 직접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내 말에 아버님의 눈빛이 흔들렸다. 상대 부모 역시 자기 자식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나는 이어 제안했다.


“그럼 아버님, 차라리 현호 어머니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 제가 선생님 입장에서 현호 어머니께 보배를 가리키며 ‘얘가 보배입니다’라고 보여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현호 어머니와 대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버님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감정적으로 아이를 다그치려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이 느껴졌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주의를 좀 잘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버님은 그제야 보배를 맡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교사로 살다 보면 이처럼 부모의 뜨거운 감정이 교실 문턱을 넘으려 할 때가 번번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서 있는 그 여린 세상을 어른들의 거친 감정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다.


오늘도 아슬아슬한 파도를 막아내며, 아이들이 스스로 갈등을 풀고 다시 웃으며 섞일 수 있는 평온한 하루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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