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이 열리고 보배가 들어서면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곤 했다. 겨우 만 3세였지만, 보배의 목소리는 늘 하이톤의 ‘라’ 음에 맞춰져 있었다. 그 높은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정돈되었던 분위기는 금세 소란스러워졌고, 저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예의주시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했다.
어느 날,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또래보다 언어 발달이 빨랐던 보배가 날카로운 말로 기찬이를 몰아붙이자, 말문이 막힌 기찬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보배의 광대뼈 주변을 손으로 꼬집어버린 것이다. 아이의 하얀 얼굴에는 붉은 상처가 맺혔고 피가 배어 나왔다.
나는 즉시 보배의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고 기찬이 어머니에도 전화를 했다. 기찬이 어머니는“선생님, 제가 지금 당장 가서 보배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싶어요.”라고 했지만 그건 보배 부모님께 여쭤보고 말씀드리겠다고 이야기 했다.
잠시 후 도착한 보배 아버지는 의외로 “좀 다쳤네. 그냥 교실에 있어”며 덤덤한 반응을 보이셨다, 기찬이 어머니가 보배를 데리고 병원에 가고자 하신다는 이야기를 하니“그럼 데려가라고 하세요”라고 허락해 주었다.
차도 없던 기찬이 어머니는 급히 택시를 불러 보배를 태우고 성형외과로 향했다. 그 정성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진료를 받게 했고, 그 덕분에 보배의 얼굴에는 흉 하나 없이 깨끗하게 상처가 아물었다.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진짜 갈등은 진료가 모두 끝난 뒤에 터져 나왔다. 보배 부모님이 그간의 영수증을 모두 챙겨온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학교 안전공제회 처리를 원하시는 줄 알았으나,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니요, 공제회 말고 기찬이 엄마한테 직접 돈을 받아주세요.”
아이들 사이의 사고는 공제회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원만하다고 설득했지만, 보배 부모님은 완강했다. 상처가 깨끗하게 다 나았음에도 공제회 항목에 없는 고가의 특수 연고 비용까지 기찬이 어머니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아이가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서로가 조금씩만 이해하고 보듬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 아이’만 소중하다는 이기심 앞에 상대 부모가 보여준 진심 어린 사과와 헌신적인 노력은 너무도 쉽게 지워졌다.
타인의 배려를 당연한 권리로 치부하고 오직 손해만 계산하는 모습들을 보며, 결국 나는 “공제회에서 나오지 않는 추가 경비는 제가 사비로 내어드릴 테니 안전공제회로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라는 제안까지 던져야 했다. 처음에는 고집을 꺾지 않으시더니 한참만에 보배 아버지는 한발 물러섰고, 나중에는 특수연고 돈은 받지 않겠다며 사건을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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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생활 동안 수많은 부모를 만났지만, 때로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보다 어른들의 얽힌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 일이었다.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 부모의 마음자리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