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꼬마 요정의 오해

by 바래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쁘던 시절이 있었다. 스물두 살, 아이들의 눈높이와 그리 다를 것 없던 서툰 초임 교사였던 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자주 사랑을 표현했는지, 그 예쁜 마음들을 얼마나 충분히 안아주었는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매일 주어지는 일과를 무사히 해내는 것이 지상 과제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님들의 단단한 신뢰를 받았고,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 속에 머물렀다는 충만한 느낌만은 기억의 한편에 따스하게 남아 있다.

그 시절, 교사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세계에서 얼마나 절대적인 이정표가 되는지 가슴 깊이 실감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나의 유년 시절 기억 속에는 늘 신김치 냄새와 투박한 만두가 있었다. 일요일 오후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김치를 다지고 만두소를 만들었다. 밀가루 반죽을 밀어 도란도란 만두를 빚어 배불리 먹고 나면 일주일의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월요일 아침,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주말 지낸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시범을 보였다. 아이들에게 '육하원칙'에 맞춰 말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교사인 내가 먼저 발표의 운을 뗐다.

"선생님은 어제 집에서 가족들과 맛있는 김치만두를 만들어 먹었어요. 직접 반죽도 하고 속도 꽉 채워서 정말 즐거웠답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이 먹은 만두가 얼마나 컸는지, 매웠는지 질문을 쏟아냈다. 뒤이어 아이들의 발표가 이어졌고, 그렇게 평온한 월요일이 지나갔다.

그런데 다음 날, 서영이가 유치원에 등원하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 건지 걱정이 앞섰지만, 당시 서영이네 집에는 전화기가 없어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하원 시킨 뒤, 학교 근처 서영이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영이 어머니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셨다.

"선생님, 죄송해요. 서영이가 고집을 부려서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의 사정은 이러했다. 서영이가 아침부터 울며불며 "오늘 만두를 만들어 먹지 않으면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날 수 없다"라고 버텼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만두를 빚기 전에는 절대로 집을 나설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결국 등원을 포기했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어머니, 전 절대로 그러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저 제 주말 이야기를 들려준 것뿐인데..."라고 해명했지만, 상황은 참으로 난감하고 어이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경력 없는 초임 교사가 범하기 쉬운 오류였다. 아이들마다 받아들이는 그릇과 결이 천차만별인데, 나는 모든 유아에게 하나의 잣대만을 사용해 반응했던 것이다. 주의집중 시간이 짧은 어린아이들은 어른의 눈에는 지겨울 정도로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조르곤 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이야기의 마디마디마다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발달 과정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서영이 역시 내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만의 상상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상상이란 결국 자기만의 언어로 새로운 스토리를 꾸며내는 과정이다. 서영이는 비록 이야기의 본질에서는 조금 벗어났을지 몰라도, 선생님의 말을 삶의 중요한 규칙으로 받아들인 채 자신만의 논리를 세운 셈이었다. 선생님의 사소한 일상조차 반드시 따라야 할 '미션'으로 여겼던 그 아이의 순수함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코끝이 찡해질 만큼 당황스러웠다.

그 소동 이후, 나는 주말 이야기를 하기 전과 후에 반드시 덧붙이는 습관이 생겼다.
"얘들아, 이건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했던 일이야. 너희가 꼭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란다."

비록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오해였지만, 아이들은 이토록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 노력한다. 투명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요정들과 38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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