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보리차 김 속에 피어난 첫 마음

by 바래

교직 3년 차, 3월의 끝자락은 여전히 시리고 매서웠습니다. 새 학기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 교실 문을 열자마자 밀려든 낯선 공기는 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 실수를 한 것이 분명했지만, 일곱 살 아이들에게 그 사실은 세상 무엇보다 무거운 비밀이었나 봅니다. "선생님, 저 아니에요"라며 도리질 치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 앞에서, 저는 존중이라는 이름의 조심스러움과 당장 해결해야 할 막막함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습니다.

결국 한 명씩 불러 세워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며 아이들의 뒷모습을 살폈습니다. 훈익이의 바지 춤을 조심스레 열었을 때, 코끝을 찌르는 역한 냄새와 함께 전해진 것은 '드디어 찾았다'는 안도감이 아닌, 생전 처음 마주하는 '뒷처리'라는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그 시절 유치원엔 따뜻한 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물로 아이의 몸을 씻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아침 일찍 출근해 끓여둔 보리차 주전자였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훈익이의 작은 손을 꼭 쥐었습니다. 초등학교 형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로 향하는 그 길이 왜 그리도 길고 아득했는지 모릅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자존심을 지키려 의자에 꼭 붙어 앉아 있었던 탓에, 배탈의 흔적은 아이의 등까지 올라와 꾸덕꾸덕 눌러붙어 있었습니다. 수치심에 고개를 떨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를 보며, 저는 따뜻한 보리차물을 적셔 조심스레 닦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아, 훈익아. 배탈이 나면 어른도 참을 수 없는 법이야.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정말 괜찮아."

아이의 부끄러움을 씻어내듯 이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습니다. 여벌 옷 한 벌 준비해두지 못했던 미숙한 선생이었기에, 학교 앞 학부형 댁까지 달려가 빌려온 바지를 입히고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도는 잠시뿐, 심한 배탈이 났는지 훈익이는 곧바로 다시 실수를 저질렀지요.

그날의 수업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기억에 남은 것은 뜨거운 보리차 김 속에서 아이와 함께 겪어낸 그 치열했던 교실의 공기뿐입니다. 38년 교직 인생의 서막에서 마주한 훈익이의 뒷처리는, 교사란 지식을 가르치는 존재이기 이전에 아이의 가장 아픈 곳을 닦아주는 사람임을 깨닫게 해준 첫 번째 훈장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5. 꼬마 요정의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