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불안의 계절을 지나 확신으로 일궈낸 나의 자리

by 바래

나의 38년 교직 인생, 그 시작은 '불안'이라는 단어와 늘 함께였다. 첫 달 기간제 교사를 거쳐 4월부터 '전임 강사'라는 직함을 달았을 때, 내 마음은 설렘과 서러움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한 학급을 온전히 책임지는 담임이었지만, 정교사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월급봉투를 마주할 때면 속이 상해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2학기 찬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재계약'의 공포였다. "내년에도 내 자리가 남아 있을까?" 하는 불안함에 매년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하기를 5년 동안 반복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88년 이후 임용 시험은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고, 그 막막함 속에서도 나는 낮에는 아이들을 보고 밤에는 책을 펴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갔다.

때로는 주변의 시선이 비수가 되어 꽂혔다. 옆 반 선생님은 내가 전임 강사라는 이유로 대놓고 무시를 일삼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반드시 정교사가 되어 내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노라고.

그러던 1월 초, 드디어 시험 소식이 들려왔다. 남은 시간은 단 14일. 하지만 지난 5년간 포기하지 않고 닦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내 안에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내가 붙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라며 마음속 불안이라는 두더지를 망치로 때려잡으며 사투를 벌였다.

결과는 기적 같았다. 단 5명을 뽑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교육청의 배려로 내가 사랑하는 지역, 바로 그 자리에 그대로 발령을 받았을 때의 그 벅참이란. 나를 무시하던 이들의 시샘 섞인 말들도 이제는 나를 흔들 수 없었다. 나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했고, 무엇보다 나를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의 환한 미소를 보며 나는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사가 되었다.

합격의 기쁨에 안주하지 않고 나는 곧바로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한 뒤, 이듬해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더 깊이 있는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초임 시절은 불안을 확신으로, 서러움을 배움의 열정으로 바꾸어낸 찬란한 승리의 기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