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상처는 조용히 스며들었다

1. 준비되지 않은 사랑이 남긴 것들

by 정고은


사랑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처럼,

상처가 언제 스며들었는지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었다.

그 사람의 말속에 담긴 미묘한 거리감, 예상보다 가벼웠던 반응,

어느 날부터 조금 늦어지기 시작한 답장처럼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장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런 신호들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마음이 움직이고 있을 때 사람은

보여주는 것보다 보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한다.

내가 기대고 싶었던 감정에 맞춰

그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포장하며

문제를 작은 오해로 치부하기도 했다.


상처는 단번에 찾아오지 않았다.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이 반복될 때마다

작은 실망들이 마음 한가운데 천천히 쌓였다.

그리고 그 실망들이 하나씩 연결되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거움이 생겼다.

그 무게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KakaoTalk_20251215_093524711_02.jpg 사진 | 오동일 (with permission)



그때의 나는

이 관계가 완전히 일그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감정이 남긴 온기를 유지하고 싶었고,

내가 느낀 따뜻함이 헛된 것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바람과 현실은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바라던 모습과 그가 보여준 모습은

조금씩 다른 길을 향하고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라는 말은

그때의 나에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감정은 있었지만 감당할 힘은 부족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그만큼의 기대를 받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불안한 마음이 결국

상처를 자라게 하는 토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균열은 관계가 무너질 조짐이 아니라,

내 마음이 다시 나를 바라보라는 신호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조용히 스며든 상처를

한참 동안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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