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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Sep 22. 2021

어서 오세요, 갱 투어입니다.

"나 요즘 오키나와에 있어. 한 번 놀러 올래?"

 인천에서 비행기로 2시간 반. 나하 국제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면 짐 찾는 컨베이어 벨트 두 개가 소박하게 여행자를 기다린다. 여느 관광 도시 공항이 그렇듯, 게이트를 통과해 나오면 각종 여행사, 렌터카 회사가 저마다의 로고를 들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 무리를 둘러보다 '갱 투어'라는 엉성한 팻말을 들고 카리유시를 입은 까무잡잡한 남녀가 있다면 슬쩍 반갑게 인사하고 따라가 보자. 책자에 나오지 않은 맛집과 한적한 명소를 데려가 줄 것이다.


 한국에서 멀지 않은 입지 덕분에, 오키나와에 머무는 동안 여러 팀의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공항으로 손님을 마중 나가는 날이면, 우리는 여행사와 렌터카 업체 사이에서 왠지 지고 싶지 않다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렇게해서 언젠가부터 오키나와 전통의상인 카리유시를 갖춰 입고 '갱 투어'라고 인쇄된 A4용지를 들고 손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을린 피부빛에 팻말까지 들고 서있노라면 왠지 옆 업체에서 '신생 여행사인가?'하고 쳐다보는 것 같아 머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놀러 온 친구들에게 한순간이라도 오키나와 여행사 사람처럼 보였다는 말을 듣는 즐거움은 그 모든 쑥스러움을 감수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카리유시를 입은 갱 & 식

 대략 생각해보아도 1년동안 열 팀 이상의 가족과 친구들이 오키나와를 찾아주었다. 우리 집에서 한 두 밤 자며 머물렀던 손님도 있었고, 함께 여행하거나, 하루정도 맛집에서 만나 시간을 보낸 손님도 있었다. 유쾌한 친구들과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오키나와 풍경 덕에 손님들의 만족도는 꽤나 높았다. 좋아하던 프로그램인 '효리네 민박'에 빗대어 '개래네 민박'이라고 불러준 고마운 친구도 있었으니 말이다. 


 손님의 취향에 맞는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은, 본디 일정을 짜는 행위부터를 여행으로 생각하는 나에게는 꽤나 적성에 잘 맞는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사진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를 골라 멋진 사진을 남겨주는 '식 스냅'도 추가되어 한 팀으로 진행했다. 1년 동안 손님을 맞이하다 보니 남편도 아이 사진, 가족사진부터 결혼식 스냅사진까지 제법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작가가 되었다. 



 어딘가에 데려다주는 것을 보통 여행사의 일이라고 했을때,
우리의 모토는 경험시켜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나는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을 때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그 곳의 일부인 것 처럼 여행하길 원하곤 했다. 작은 에어비앤비의 옥상에서 잠시 누워 햇볕을 쬔다던가, 우연히 마주친 현지인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이 사소한 경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별을 보며 술을 한 잔 하는 것은 우리가 자부하며 줄 수 있는 코스 중 하나였다. 5분 남짓 걸어가면 닿는 그 해변에 우리는 종종 한 손에 와인이나 맥주, 한 손에 돗자리를 들고 걸어가곤 했다. 그곳은 밤에 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친구들에게는 프라이빗 비치라고 너스레를 떨며 오붓하게 즐길 수 있었다. 장난스레 투어 상품이라며 '로맨틱 비치 나잇'이라는 그럴싸한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코스를 같이 간 첫 손님은 남자 둘이 온 식의 친구들이었다. 운이 좋으면 별똥별을 보는 날도 종종 있었다. 설령 가끔은 구름이 낀다 해도 귀를 채우는 파도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돗자리에 누워 별을 찾는 행위 자체가 자아내는 낭만이 가득했다. 이곳에 도착하면 처음에는 감탄사를 뱉다가 어느새 조용히 파도소리를 들으며 그 밤하늘에 취해 잠이 오곤 한다. 

 또 가을 즈음에 가장 좋은 코스인 자키미 성터로의 피크닉도 있다. 성터를 낀 큰 공원에서 관광지를 아주 조금만 벗어나면 서쪽으로는 바다가, 북쪽으로는 인공호수가 보이는 너른 잔디밭이 나온다. 편의점에 들러 먹을 것을 사 가서 벤치에 앉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이왕이면 나들이 감성을 가득 담아 예쁜 돗자리 위에서 정갈하게 담은 과일과 보온병에 내린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우리 초대에 응해서 오키나와에 와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특히 한 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우리 집 거실에서 자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 주었던 친구들에게는 조금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  

 "갱 투어가 이렇게 크기까지, 초반의 부족함도 너그러이 이해해준 여러분의 성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인사말과 함께 언젠가 갱 투어&식 스냅 시즌 2를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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