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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 칼칼 감칠맛찌개

개백수 요리일지 1) 준TV 감자 두부 고추장찌개

명색이 요리하고 요가하고 책 읽는 개백수인데,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었다. 3년간 채식지향 도시락 생활자로 살았고, 지금도 우리집에서 일주일에 최소 10끼니 정도 2인분의 요리를 담당하고 있다. 내가 즐겨찾고 잘 먹는 레시피를 하나씩 소개해보려고 한다. 집사람을 위해 고기요리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뭐든 잘 먹는 양반이라 사실 고기요리에는 딱히 공을 들이지 않는다. 요리를 처음 시작했던 것은 2015년 미국 보스턴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때이긴 한데, 사실 2020년 채식을 하면서부터 실력이 확 늘었다. 지금은 고기를 안 먹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먹는 걸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직접 요리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내 입맛에 대해 먼저 소개하자면, 어릴 때부터 김치와 김만 있으면 뚝딱 먹을 수 있는 '짠 음식' 선호자다. 단맛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 과일을 잘 먹지 않고, 단호박이나 고구마, 옥수수처럼 단맛이 든 채소도 즐겨 먹지 않는다. 대신 신맛은 꽤 즐기는 편이다. 채소든 생선이든 생으로 먹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 익혀먹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러니 나는 국물 요리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때 엄마가 살 찐다고 국에서 건더기만 건져 먹으라고 했는데, 온갖 풍미가 녹아 있는 국물이 좋아서 항상 밥 한 술, 국물 한 술 떠먹는 게 좋았다. 밥을 좋아하는 것도 한몫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레시피는 딱 밥 한 술, 국물 한 술씩 떠먹으면 너무 맛있는 음식이다. 요리 유튜버 준TV의 준 아저씨 고추장찌개 레시피로, 그렇게 먹다가 국을 몇 그릇 더 떠먹은 이력이 많다. 내가 준TV를 처음 봤을 때는 구독자가 10만 얼마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80만이 넘은 대 유튜버가 되셨다. 아저씨의 레시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조미료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데 그게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식 레시피들이 내 입맛에 너무 달아서, 대부분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 준 아저씨 레시피가 나는 딱 맛있다. 반찬이 달면 집에서 해먹는 건데도 밖에서 사먹는 것 같은 느낌이 나는데, 단맛으로 재료들 자체의 맛을 해치지 않아서 좋아한다. 앞으로도 나의 요리 이야기에 여러 차례 등장하실 수도 있고, 레시피가 정말 좋으니 구독해봐도 좋다!


요리하다가 사진 찍는 걸 잊어서 남은 게 재료 사진뿐이다. 맨 처음 들어가는 재료들 손질한 모습이다. 소금 약간 넣고 8분 정도 팔팔 끓인 뒤 빨간 양념들을 넣는다.


이 레시피로 고추장찌개를 10번 이상 해먹어보았다. 재료 손질 이후 불에서 15분 밖에 안 걸리는 간단한 레시피지만, 꽤 잘 짜여진 레시피라서 반드시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 레시피의 어느 한 부분만 바꿔도 그 맛이 안 난다. 마늘은 반드시 두껍게 편썰어야 구수한 맛이 나고, 처음부터 넣는 다시마와 파, 멸치 모두 빼먹으면 안 된다. 특히 멸치는 반드시 준 아저씨가 안내하는 대로 기름 없이 덖은 다음에 사용해야 잡맛 없이 깔끔하다. 이런 재료들과 감자까지 넣고 7~8분 푹푹 끓이다가 이제 중간에 넣는 재료들이 있다. 고춧가루, 고추장, 참기름, 건고추. 고추장을 많이 안 넣어도 감칠맛이 좋은 고추장찌개가 완성된다.

매번 따라하는 레시피인데도 깜빡하고 재료들을 빼먹는 바람에 처음에 영상을 보면서 차근차근 따라할 때와 다른 맛의 찌개가 된 적이 많다. 이 레시피는 들어가는 어떤 것도 빼거나 더 첨가하지 말고 딱 이대로 순서에 따라 해야 한다. 나는 다시마를 잊은 적도 있었고, 중간에 고춧가루나 참기름, 건고추도 빼먹은 적이 있었다. 건고추도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걔가 빠지니까 그 감칠맛이 안 났다. 마늘도 편썰지 않고 다져놓은 걸 사용했다가 맛이 전혀 달라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명색이 고추장찌개라 고추장을 잊은 적은 없었다. 나는 주로 동네 손두부집 겸 방앗간에서 고추장을 사다 먹거나 죽장연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고추장을 사용하는데, 동네 방앗간 고추장이 시큼한 맛이 더 강하다. 하지만 이 고추장찌개는 고추장이 많이 들어가는 레시피가 아니라서 시큼한 향도 다른 재료들과 어우러져 부드럽게 녹아든다. 

반대로 다른 걸 더한 적도 있었다. 그냥 물 말고 다른 찌개나 국 끓일 때처럼 쌀뜨물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이 찌개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감자가 푸스러져 전분이 녹은 맛이 쌀뜨물로 끓일 때 덜 느껴져서 그 매력이 오히려 반감된다. 대신 완전히 성공했던 것은, 감자였다. 여러 번 해먹다 보니 이 고추장찌개에는 마트나 기타 식료품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쫀득한 수미감자 류가 아니라 포슬포슬한 옛날 스타일 토종감자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찌개를 해먹으려고 일부러 포슬포슬한 감자를 한 박스 사서 잔뜩 해먹은 적도 있다. 결과는 대성공! 일반 감자라고 써있는 건 대부분 수미감자니까, 홍감자든 토종감자든 다른 이름이 붙어있는 감자를 사서 해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항상 맛있다고 하면서 정신없이 먹기만 하다가, 지난번 해먹었을 때는 내가 왜 이 고추장찌개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일단 흔히 아는 고추장찌개 맛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엄마가 집에서 고추장찌개를 해준 적이 전혀 없었고, 고추장찌개라는 음식은 학창시절 급식으로만 먹어봤기 때문에 딱히 소울푸드라거나 그립고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준TV 고추장찌개는 보통 고추장찌개보다는 덜 자극적인 장칼국수 국물 같은 맛이 난다. 장칼국수만큼 걸쭉하진 않지만 감자 전분이 적당히 풀어져 있고, 고추장의 약간의 시큼함과 푹 익어서 달큰한 마늘, 흐느적거리는 파와 후루룩하며 들이킬 수 있는 얇게 편을 낸 두부. 호박이나 당근이 없이도 감자와 다시마 덕분인지, 자연스러운 단맛이 충분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 일요일에 다같이 교회 갔다가 오면 저녁에 엄마가 멸치 육수 우려서 김치 칼국수를 끓여준 적이 많았다. 멸치 감칠맛에 푹 익은 김치의 시큼함이 어우러진 식사. 면요리를 좋아하는 엄마도, 김치라면 환장하는 나와 아빠도, 동생도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다. 엄마가 칼국수를 할 때면 등장하는 무지 무거운 연한 청색 도자 그릇도 좋았다. 많이 먹는 사람들만 그 그릇에 먹고, 엄마는 항상 크기가 작은 흰 그릇에 먹었다.

고추장찌개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이 레시피를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이 김치 칼국수와 연관되는 것 같다. 감칠맛을 기반으로 하는 칼칼함, 뜨끈한 국물. 엄마도 좋아할 것 같은데, 기회가 없어 아직 해준 적이 없다. 구황작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 나도 엄마 입맛을 닮은 건데, 내가 이 고추장찌개의 감자를 좋아하는 걸 보면 엄마도 이 찌개 속 감자는 좋아할 것 같다.




사진 찍다 요리하느라 잊어서 완성된 찌개 사진이 없다... 다음번에 찍어서 올려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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