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 연작시 : 1, 2, 3
이무기
용이 되고 싶어라
용이 되고 싶어라
그러한 꿈을 그러모아
한 손에 쥐니-
난 이걸
여의주
라 불렀다.
금빛으로 일렁이는 물결
그 물결에 비추어 빛나는
나의 굳센 눈
내일은
모레는
난 네 다리를 얻고
여의주를 그러쥐며
꼭 그러쥐며
이무기 2
차가운 허공을 딛고
굳센 두 다리로
다시금
박차를 가하니
역행으로 휘몰아치는
거센 맞바람을
나의 모든 걸 바쳐
그
방향을 바꾸니
나의 몸은 한없이 치솟아 오르더라
옆구리가 간질거리더니
다리가 솟아올랐고
두 다리 다섯 발가락으로 달과 해를 그러쥐니
산의 능선들이 굽이치고
인적 드문 마을에 그림자 드리우다
빛 쏟아지길 반복하더라
이 얼마나 기다렸던가
용이 되길.
용이 되길.
이무기 3
드넓은 천공을
그
광활함을
가로질르는
돌풍에 업히어
모든 것을 맡긴 비늘
마디마디 사이로
아프다 못해 짜릿하게만
흩어져가는
이 감정
언젠가 우물 속에서 바라보았던
그 둥그런 하늘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두 둥근 눈에 담지 못하겠구나
우리는 종종 ‘이무기’를 용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과거 설화 속에서도 강철이란 이무기(꽝철이라고도 합니다.)는 오랜 시간 수행했음에도 승천하지 못한 한을 품은 악신으로 묘사됩니다.
지나가기만 해도 곡식이 말라죽는다 하여 ‘
강철이 간 데는 봄도 가을이다.’라는 속담도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과연 이무기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존재일 뿐일까요?
이무기는 승천할 때 인간 눈에 띄어 지상으로 떨어진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승천 전 용이 되기를 준비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무기가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성공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날아오르기를 고대하는 것이죠.
꿈을 찾고 그곳을 향해 다가간다는 것은 때론 매우 고통스럽기도 하고 희생이 따르기도 합니다. 꿈을 이룬다고 해서 그것이 바라던 것이 아닐 수도 있고 그 자리에 다가갈 때보다 더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모두 거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참된 삶이 아닐까요? 이러한 점들을 알려주려 우리 조상들은 이무기를 그런 존재로 묘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무기 연작 시들에서는 이무기가 여의주 즉 자신의 꿈을 품은 채 용이 될 날들을 기다리는 1편,
오랜 시간 끝에 때론 고통스럽지만 황홀한 승천하는 과정을 거치는 2편,
그리고 완연한 용이 된 3편으로 구성됩니다.
이 시들을 통해 여러분께 질문드리고 싶은 건 이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몇 편의 이무기인가요? 당신이 품고 있는 여의주를 얼마나 소중히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