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앵무새, 그리고 미안함

내 삶에 몽실이가 스며들었던 순간

by 서비채

난 아주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다른 또래 여자 아이들과는 다르게 고양이, 강아지, 토끼가 아닌 맹수 즉 사자를 좋아했다. 맹수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사자의 얼굴이 좋았다.


“아궁이(= 사자). 나 아궁이 좋아! “


제주도의 테디베어 박물관에 가서 친척 언니들이 곰인형을 고를 때 난 혼자 사자 인형을 골랐다. 엄마는 이때를


“다들 곰인형 고를 때 넌 사자를 골라 오더라. 진짜 어이가 없었어. 테디베어 박물관 가서 사자라니.”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점점 커가며 난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아궁이(= 사자)와 멀어졌다. 4살 이후쯤부터 사자에 대한 나의 기억 필름이 끝기고 말았다. 사자를 아궁이라고 부르고 종종 아빠와 가게에 가서 엄마 몰래 조그마한 사자 인형을 사 왔던 것이 내 기억의 전부이다.


그렇다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난 이때부터 새를 좋아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비둘기가 나를 피해 푸드덕 날아가 버려도 난 가까워질 듯 멀어지는 새가 참 좋았다.


공원에서 “새들아 이리 와!”라고 소리치자 기적 같은 우연히 몇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날아왔을 때는 숨이 멎을 정도로 너무 기뻤다.


아빠가 텃밭에 밭을 일구러 나갔을 때 애꿎은 아빠를 현관에서 붙잡아 난 ‘77마리 새 잡아오기’라 쓴 종이를 쥐어주고 약속을 꼭 지키라고 신신당부했다.


당연히 아빠가 새를 잡지 못할 것은 알았지만 혹시나 진짜 잡아오려나 하는 어린 마음에


“새가 다 날아가서 못 잡았어.”란 아빠의 말은 큰 충격이었다.


이 무렵 나는 펫숍에 갔다. 펫숍의 어두운 진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펫숍에서 난 몽실이를 처음 만났다.


상당히 규모가 큰 쇼핑센터 안의 펫숍이었다. 토끼, 도마뱀, 슈가글라이더, 고슴도치 등등 많은 동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중 앵무새 전시장의 규모가 가장 컸다. 왕관 앵무, 카나리아, 사랑앵무 등등 수많은 새들이 성인 키보다 큰 층층이 쌓여있는 투명한 전시장 안에 갇힌 채 짹짹거리고 있었다. 그땐 새들의 노래라 느꼈던 짹짹 거림이었다.


단연 돋보이는 새가 있었다. 파란 깃털에 몽실몽실한 구름 같은 하얀색이 섞여있는 새가. 그 아이를 보자마자 난 오늘 이 아이와 같이 집에 갈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나 앵무새 키우고 싶어. 키우게 해 주면 안 돼?”


“안돼. 앵무새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


“내가 새장 청소도 매일 하고, 모이도 주고, 똥도 치우고, 놀아줄게. 제발 나 한 번만 믿어줘. 나 진짜 앵무새 키우고 싶어.”


덧붙여 “앵무새 안 키우게 해 주면 나 진짜 울 것 같아.”


결국엔 나의 승리였다. 나를 믿어보기로 한 엄마와 아빠는 고심 끝에 앵무새 키우기를 허락했다.


“그럼 앵무사 골라. 누구로 할래?”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까 보았던 푸른 앵무새를 키우고 싶다 했다.


“난 쟤. 저 앵무새 너무 예쁘게 생겼어.”


“그래? 그래도 더 둘러봐봐. 저기 뒤에도 앵무새 더 있다.”


엄마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냥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들었다. 내 마음속엔 오직 푸른 앵무새만 있었다.


뒤 쪽의 앵무새도 둘러보기는 했다. 핸들링이 되어있던 앵무새였다. 당연히 더 키우기 쉬울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앵무새를 키우려고 온 다른 사람들도 뒤쪽 전시장에 몰려있었다.


엄마는 핸들링이 잘 된 앵무새가 되지 않은 더 낫겠다고 했다. 앵무새는 처음 키워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난 푸른 앵무새를 골랐고 그 앵무새는 운명같이 그날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푸른 앵무새는 몽실이가 되었다.




초여름밤이었지만 그날은 내 기쁨으로 온 집안이 후끈후끈했다.


몽실이는 새장을 탈출하고 싶었는지 마치 무림고수처럼 새장 천장을 거꾸로 타고 올라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고 앙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집에 오는 친구들마다 내가 직접 장갑을 끼고 새장에서 몽실이를 꺼내어 자랑했다. 모두가 몽실이를 좋아했고 몽실이에 대한 나의 애정도 깊어져갔다.




언제부터 인가 몽실이는 깨물기 시작했다. 손에 올려 핸들링을 가르치려고 하는 아빠의 손을 깨물었고 어깨 올려 놀아주던 내 귀를 깨물었다.


점점 그 행동이 심해지더니 가족 모두 몽실이를 조금씩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어깨에 올릴 때는 물론 손에 올릴 때에도 무서웠다.


점차 몽실이는 아빠만 만지기 시작했고, 엄마와 나는 지켜보기만 했다.


뾰족한 부리를 조금 갈아도 보고 깨물기를 멈추기 위해 많은 것들을 했다.


그렇게 몽실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전보다 많아졌다.


그리고 하루종일 정말 집이 울려라 짹짹거렸다.


그렇다고 혼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밥도 제시간에 주고 아빠가 하루에 한 번은 몽실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아픈 데가 있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만 같이 놀고 교감했던 시간이 전과 다르기 사라졌을 뿐.




”짹짹짹 짹짹짹 “

아래층과 옆집이 너무 시끄럽진 않을까 걱정하며 1년이 흘렀다. 몽실이가 내는 소음으로 옥탑방으로 새장을 옮겨보기도 했지만 전보다 덜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이젠 엄마, 아빠, 그리고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참을 대로 참았지만 참을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벗어나 버린 지 오래였다.


결국, 몽실이를 펫숍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이 말을 듣고 난 많이 울었다. 다시 돌려보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몽실이는 내 가족이다.


가족을 펫숍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엄마와 아빠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몽실이의 지저귐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결정을 꺾을 순 없었고 몽실이를 다시 보내기로 한 날이 밝았다.


여느 때 같은 주말, 아무렇지 않게 쇼핑센터에 놀러 가는 것처럼 빠르게 아침을 먹고 씻었다. 평소와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우리 손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몽실이가 들어있는 새장이 들려있었다.


쇼핑센터 입구에서 난 몽실이와 이별했다. 저 멀리 아빠와 머리 깃을 빠짝 세운 몽실이가 멀어져 갔다.




이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으면 당연히 왜 그랬냐. 어떻게 그렇게 짧지 않게 키운 앵무새를 다시 돌려보냈냐 할 것이다.


나도 이해한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에겐 다른 이들은 절다 이해 못 할 수많은 인내 그리고 고민이 있었다.


내가 자란 이후로 엄마는 앵무새를 무척 싫어하신다. 앵무새를 보면 몽실이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온다고.


“그땐 어떻게든 참았어야 했어. 책임지고 데려왔으면 끝까지 책임졌어야 하는데. 우리 힘든 거만 생각한 거 같기도 하고.”


아직도 앵무새를 보면 몽실이가 떠오른다. 애써 “몽실이는 예쁘니까 우리보다 나은 주인 만날 거야.”라고 변명 같은 말을 하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동물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끝까지 책임져주지 못했던 유일한 동물, 내 가족이 몽실이였다.


몽실이란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설명하기 어려운 미안함이 밀려든다. 다만, 나를 스쳐간 이후에도 푸른 세상을 훨훨 날았길. 혹은 날고 있길. 염치없지만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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