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즈런너와 고양이, 그리고 김치볶음밥
밥친구를 쓰게 만든 첫 번째 메뉴, Q의 김치볶음밥
나에겐 Q라는 친구가 있다. 내가 목포로 이사 온 11살에 처음 만나 벌써 인생의 절반을 함께했다. 영어 과외를 하며 친해졌는데, Q에 대한 첫인상은 도라에몽이었다. 외형에서는 하얀 얼굴에 고양이 수염처럼 앙증맞게 패이는 보조개를 제외하면 '무언가를 꺼낸다'는 습관이 꼭 그랬다. Q는 항상 자그마한 가방을 메고 다녔고, 이곳에는 자가비, 라면땅, 초콜릿 같은 간식이 들어있었다. 같이 공부하니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나의 몫의 간식을 챙겨줘서 Q의 가방은 도라에몽의 주머니보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12살 겨울 어느 날, 저녁을 만들어 주겠다는 Q의 초대를 받아 집에 놀러갔다. 도라에몽이자 외동인 Q는 첫인상에 어울리게 고양이를 키웠다. 회색과 하얀색의 페르시안 고양이 두 마리, 치즈색 노르웨이숲 고양이 한 마리. 총 세 마리였다.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 가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고양이들은 낯을 가려 소파에 숨어들었고, 내가 볼 수 있는 건 잽싼 꼬리뿐이었다.
약간 시무룩해져 식탁에 앉은 나에게 Q는 따뜻한 김치볶음밥을 차려 주었다. 고사리 손으로 만든 Q의 김치볶음밥은 특별했다. 복실복실한 고양이를 못 본 아쉬움이 눈 녹듯 사라질 만큼.
연갈색의 그라탕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온 김치볶음밥의 김치는 큼직하게 썰어 약간의 설탕을 넣고 드문드문 그을음이 나도록 볶았다. 새콤하면서 달짝지근했다. 한 입 먹자 김치의 신맛이 입안에 퍼지다가 설탕의 단맛이 뒤따라왔다. 그을음이 탄 부분은 고소했다. 밥은 반질반질 윤기 나는 조약돌을 닮은 검은콩이 들어간 잡곡밥이었다. 건강식을 드시는 Q네 집 어머니의 영향인 듯했다.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나는 밥에 들어가는 콩을 싫어했다. 그런데 Q가 만들어준 김치볶음밥에서는 약간 덜 익은 콩이 오독오독한 식감을 내며 특유의 단맛을 살짝 보충해 줬다. 이날만큼은 콩이 좋았다. 위에 올라간 고명은 계란후라이가 아닌 스크램블에그였다. 짭짤하고 바삭한 양반김에 싸 먹으면 달걀의 부드러움과 김의 바삭함이 놀랍게 잘 어울렸다. 매콤한 김치볶음밥의 마무리로 마시는 고소한 우유까지. 맛의 기승전결을 아는 Q는 완벽한 꼬마 셰프였다.
우리 집에서 김치볶음밥은 아주 가끔씩만 먹을 수 있는 메뉴였다. 우리 집의 주된 요리사인 엄마가 김치를 볶으면 나는 연기에 기침을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메뉴를 그것도 친한 친구의 집에서 발견해 정말 반가웠다. 그 뒤로 하얀 소스를 곁들여 먹는 만화카페의 김치볶음밥, 학교 후문 이자카야에서 파는 불맛 김치볶음밥 등 다양한 김치볶음밥을 먹어봤다. 하지만 Q의 김치볶음밥을 뛰어넘는 맛을 만나지 못했다. 나의 인생 김치볶음밥은 Q가 해준 것이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밥을 다 먹은 후에 Q는 테일즈런너라는 게임을 알려줬다. 그때는 한창 쿠키런, 템플런, 윈드러너, 테일즈런너 등 달리기 게임이 유행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휴대폰으로 게임을 했었는데 Q는 노트북으로 게임을 했다. 나에게 노트북이란 동생이랑 둘이서 누워 톰과제리나 아빠가 다운받아둔 고전 애니메이션을 보는 작은 영화관이었다. 영화를 볼 때처럼 큰 화면으로 하는 게임은 처음이어서 평소보다 두근거렸다. 노란빛 게임 스테이지 속의 포니테일을 한 캐릭터가 Q의 캐릭터였다. Q는 "너도 한번 해봐"라며 노트북을 내밀었지만, 친구의 캐릭터로 게임에서 진다는 게 왠지 미안해서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게임을 잘하는 Q였기에 옆에서 응원하며 관전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지금도 종종 Q의 집에 놀러간다. 이젠 고양이 세 친구도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또 왔냐" 하며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그럴 때마다 Q의 어머니는 나를 보며 어린 날의 내가 인사를 얼마나 잘하는 예의 바른 아이였는지 칭찬해주신다. 그러곤 동생과 함께 놀러 갔을 때 함께 얌전히 앉아 책을 읽던 모습이 참 귀여웠다는 말을 덧붙이신다. 사실 그때 내가 어땠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Q가 만들어줬던 김치볶음밥의 맛과 테일즈런너의 노란빛 화면만큼은 선명하다.
어제 밤에도 Q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에 깜빡 잠이 들어 꿈을 꿨는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약속 시간에 20분 늦었는데도 내가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실제가 아닌데도 너무 미안해서 사과하려고 연락했다고.
처음 만나서 나에게 간식을 쥐어주던 그때처럼 여전히 엉뚱하고 찬란한 Q가 애뜻했다.
Q가 해준 김치볶음밥과 게임 섬광은 코끝이 찡한 냉기가 도는 그 맘때가 되면 여전히 꺼내보는 포근한 겨울날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