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 피터가 아버지 에고와 싸우던 중 에고가 피터에게 본인이 죽으면 피터의 특별한 능력이 사라진다고 말하자 피터는 본인을 사랑해 주는 가족 같은 동료를 떠올리며 평범해져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부모님이 사랑을 모자라게 준 것도 아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동생은 그런 욕심이 없는 것을 보아. 내 선천적 기질이 한몫한 것 같다.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친구가 칭찬을 더 받았다고 울음을 그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가 온 일을 엄마도 충격적이어서 아직까지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들께 이쁨 받고 싶어 글씨 예쁘게 쓰기, 반장, 부반장 하기, 선생님 잔심부름 도맡아 하기, 적극적으로 발표하기 정도로 그런 모습이 드러났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에는 조금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치마 줄이기, 화장하기, 얼떨결에 과고 지원하기 정도였다.
중상위권 정도의 실력인 내가 과고에 가서 공부로 바닥을 기는 경험을 하고, 승부욕이 올라온 나는 악에 받쳐서 공부했고 카이스트에 왔다. 카이스트에 왔다는 건 부모님에게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이기도 했다. 힘들었던 고등학교 생활을 지나고 대학교 1-2학년 시절에는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를 잘했고, 눈치가 빨랐고, 예쁨 받는 법을 무의식적으로 행했으니까.
그런 내가 대학교에서 낮은 학점을 받고, 인간관계에서 좌절한 순간을 모두 지나고, 여러 활동을 통해서 좀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나는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게 어느 순간 느껴졌다. 그럼에도 완전히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고학년이 돼서 올린 성적, 나만의 활동으로 쌓은 내 이야기로 여러 수상을 했고 그때 한 번 더 나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 도피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원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나서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나이도 24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 실수를 해도 몰라서, 미성숙해서 그렇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나이 같다. 내가 느낀 24는 그렇다. 더 이상 어리다는 이유가 핑계가 되지 않는 나이 오롯이 나의 일에 책임을 지는 시작을 하는 나이 같다. 이런 내가 나이에 얽매이는 고지식한 사람 같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19,20,21,22,23살 시절의 나는 많은 철없는 말과 행동을 했지만 주위의 따뜻한 사람들은 그 모습까지 어려서 그렇다며 이해해 주었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주었다.
대학원에서 첫 학기가 특히 힘들었던 이유는 나는 평범함을 인정해야만 해서였던 것 같다. 일이 많아서 사람이 힘들어서 대학원 첫 학기를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찬란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24살의 나는 엄청난 회사에 취업을 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놀랄 만한 사건을 하나 더 일으킬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카이스트 졸업생이 가는 대학원으로 왔고, 여기서도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주위의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열심히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순적이게도 평범함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내가 평범해서 특별하다는 것을 느낀다. 진격의 거인을 감명 깊게 본 사람이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지 내가 대단한 성과를 내야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나는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나는 운동을 하면서도 그 순간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 더 운동을 잘하게 될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서 운동했다. 그렇다 보니 부상이 와도 참았고, 하기 싫어도 했다. 더 많은 사람을 보면서 취미를 할 때 그 순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을 봤다. 그 순간의 감각에 집중하는 사람을 보니 잘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수영을 할 때도, 테니스를 칠 때도 잘하지 않는데 꾸준히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다. 성취중독자인 나는 그래서 스스로를 더 갉아먹었다. 대부분의 내 취미 생활은 자책하고, 버티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즐기는 건 손에 꼽았다.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지면 서러워했고, 더 스스로 강해져야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순간이 드물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평범해도 상관없다. 내가 나인 것 자체가 의미가 있으니까. 나를 언제나 걱정하는 나의 가족, 나의 취미, 내 친구, 내가 좋아하는 나의 일까지 심지어 개복치 같은 나의 체질까지 이 모든 게 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게 없어지더라도, 내가 무엇을 잘하지 않더라고 그럼에도 살아가고, 그럼에도 해내는 나는 대견하다. 나에게 대견하다는 말을 해주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나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 평범한 나를 의미 있게 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