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일반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처절한 위장 사투기
나는 잘 체한다. 특정한 사건을 이후로? 그런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내 위장은 튼튼하지 않았다. 매사에 열정이 넘치고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나에게 나약한 위장은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방해가 되었고, 위장이 탈 나지 않도록 매 순간을 경계하며 살거나, 이후에는 체했어도 고통을 참아가며 음식을 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의 체기의 원인과 증상은 지금까지 내가 느낀 걸로는 아래와 같다.
- 추운 날씨에 차가운 음료 마시기
- 추운 날씨에 오래 노출되기
- 차가운 생야채 많이 먹기 ex) 샐러드
- 차가운 음식 먹기 ex) 팥빙수
- 차가운 음료 한 번에 많이 마시기
- 과식하기
- 식후에 바로 운동하기
- 연구실에서 한 소리 듣기
- 스트레스받기
- 구부정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기
- 구부정한 자세로 밥 먹기
- 불편한 사람이랑 밥 먹기
- 김밥, 햄버거, 잡채, 중국 음식과 같이 여러 재료가 한 번에 뭉쳐져 있는 음식 먹기
- 술 먹은 다음날
- 바나나, 떡과 같은 끈기 있는 음식 먹기
- 복부가 빵빵해진다. 특히 원래 흉통이 작은 편인데 아랫배가 평소의 2배 정도로 나온다.
- 방귀가 나올 듯 하지만 나오지 않아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한다.
- 볼 일을 보지 못한다.
- 두통이 온다.
- 왼쪽 갈비뼈 내부가 아프다.
- 손발이 급속도로 차가워진다.
- 안색이 창백해진다.
- 배를 누르면 꾸룩 거리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나는 해당 증상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는가
- 혈자리 누르기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있는 합곡혈을 비롯해 팔목, 관자놀이를 지압한다. 이는 일시적으로 통증 완화가 있다고 느껴지긴 하는데... 플라시보일 수도... 증상자체가 괜찮아지지는 않는다.
- 소화제 먹기
먹어본 것 중에는 생약성분 액상 소화제들이 잘 맞다. 위생천, 가스활명수(약국용)가 그나마 미약한 효과가 있다.
- 전기장판 위에 눕기
일단 몸을 따뜻하게 하면 순환이 잘되는 느낌! 이 들어서 눕는다.
- 복부 찜질하기
요즘 세상에는 전기로 데울 수 있는 온수팩이 나와서 이를 배에 올려둔다.
- 소화 스트레칭하기
지금까지 효과가 가장 좋았던 것 '에일린 소화요가'다. 따라 하고 나면 복부 팽만감이 좀 가라앉는다.
- 복부 지압하기
민간요법이라 한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공대생인 나도 아플 때는 어쩔 수가 없다. 엎드린 후 나무에 비해 강도가 비교적 약한 스티로폼 폼롤러를 배 밑에 두고 복부를 압박한다. 움직이다 보면 특히 아픈 부위가 있는데, 그 부위들을 좀 풀어주면 가스가 배출되는 느낌이 든다.
- 한의원에 간다.
기존에 학교 근처에 있던 곳을 다녔는데, 하루는 문이 닫아서 집 근처 오래된 한의원으로 갔다. 그곳 원장님은 생각보다 깊고 아프게 침을 높으셨는데 그렇게 침을 맞고 나니 증상이 괜찮아져서 주기적으로 아플 때마다 다닌다.
적고 보니 소화제 먹기 빼고는 민간요법 같긴 하다. 하지만 24년째 한 달에 4번 이상 씩 체하면서 얻은 팁이니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유용하게 사용해 주면 좋겠다.
한의원에서 보통 듣는 말은, 몸이 냉하다, 냉증이 심하다, 횡격막의 근력이 약하다. 정도다. 소화기 내과에서 듣는 말은 신경성이다, 규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정도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나도 알고 있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거운 상태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집밥만 먹고살면 체할 일이 크게 없다는 걸...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독립해서 자취하는 1인 가구가 집밥을 해 먹을 여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일단 체하고 나면 업무에 정상적으로 집중할 수 없다. 나는 행복하지 않을 일이 없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급격히 세상이 우울하게 보인다. 예민해진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내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해도 평균 정도라고 느껴지고, 만약 유지를 못하고 한번 크게 아픈 경우 모든 에너지가 바닥으로 떨어져 다시 평균 정도로 올리기까지 너무 많은 노력이 들기 때문에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 매일 운동을 한다. 운동을 안 하면 몸이 너무 춥다고 느껴진다. 아침에 수영을 하고 몸이 한번 달아오르면 그제야 몸이 시동이 걸린 것 같다. 수영이 없는 수요일 토요일에는 웨이트를 하고 어떤 날에는 테니스랑 같이 하루에 2번 운동을 하기도 한다. 운동을 쉰 지 3일 정도가 지나면 몸이 급격하게 냉해지는 게 느껴진다. 손발의 차가움이 운동을 할 때는 간헐적이었다면 운동을 쉬면 손발이 얼음장인 채로 하루 종일 살아가야 한다.
- 이번 겨울에는 차가운 음료를 아예 끊었다. 원래 디카페인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는 건 좋아했는데, 이번 겨울에는 유독 아아를 마실 때마다 체해서 한의원에 가서 겨울에는 찬 음료를 마시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 잠을 많이 자려고 한다. 기존에 4-6시간만 자던 수면 패턴을 7-8시간은 자도록 수면의 우선순위를 앞에 뒀더니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 생야채를 거의 먹지 않는다. 이전에는 다이어트에 샐러드가 워낙 좋다고 하니 무작정 생야채라면 좋다고 생각했지만 양배추 샐러드를 먹을 때마다 배가 빵빵해지고 결국 탈이 나는 스스로를 자각하고 생야채를 기피한다.
- 위와 비슷한 맥락으로 오히려 흰쌀밥을 먹는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잡곡밥을 언론에서 옹호하지만, 그것도 소화시킬 능력이 있는 위장에 한해서다. 내가 가진 위장은 식이섬유 소화 능력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독이 된다. 오히려 정제 탄수화물이 소화 측면으로 봤을 때는 유리하다.
중학교 때도 어느 정도 체하긴 했지만, 스트레스가 심해진 과학고 시절 가장 많이 체했고 거의 일주일에 반 이상은 소화불량 상태였던 것 같다. 비운 위생천이 몇 박스 일지... 한약을 그렇게 먹어도 해결되지 않았고, 운동을 많이 해서 스스로 체력이 올라왔다고 느끼는 지금마저도 예상치 못한 소화불량에 무너지고 만다.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에게 힘이 되었으면 싶기도 하고, 이런 위장을 가진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살아가나 싶기도 하다.
특효약이 있으면 누구든 제보를 간절히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