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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서우 Sep 15. 2022

영화로운 제주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영화롭다 (榮華롭다)

[형용사] 몸이 귀하게 되어 이름이 세상에 빛날 만하다.


 모름지기 제주만큼 한국인들의 사랑을 꾸준히 독차지하고 있는 여행지도 없을 것이다. 하기야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이 만들어내는 제주 특유의 정경에 한번이라도 오롯이 취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번 생에는 제주의 매력으로부터 완전히 헤어 나오기 그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필자 또한 일평생 제주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그게 썩 나쁜 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리운 장소를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것도 우리네 인생의 재미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주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항상 제주를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해도 아쉬울 것 없겠지만,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세상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여유는 그다지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타까운 신세에 좌절하고 있을 때마다 꼭 필자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영화들이 있다. 잠시나마 영화를 보는 이들이 제주와 맞닿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고마운 작품들이다. 부디 여러분도 해당 영화들을 통해 영화로운 제주와 함께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제주로 향하는 당신을 위한 전람회, <건축학개론>


서른 다섯 살의 승민은 15년 만에 자신의 첫사랑 서연과 마주한다. 건축가가 된 승민의 앞에 불쑥 나타나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하는 서연. 서연의 의뢰를 받아들인 승민은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기억들을 조금씩 떠올려본다.


 2012년 3월, 살랑이는 봄바람과 함께 <건축학개론>은 우리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련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감성적인 시나리오와, 풋풋한 시절의 첫사랑을 추억하게끔 만드는 훌륭한 연출로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간지럽힌 <건축학개론>은 일명 '첫사랑 신드롬' 돌풍의 주으로 떠오르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바 있다. 멜로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4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을 불러모았으니 당시 이 영화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여러분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편, 드넓은 바다와 산뜻한 바람을 그대로 담아낸 스크린 속 제주의 정경은 관객들로 하여금 감탄과 탄성을 자아내도록 만들기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때문에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서 고즈넉한 제주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극중 등장한 여주인공 '서연'의 집은 아름다운 조경과 한적한 분위기로 상영 당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랑에 힘입어 해당 영화 세트장은 모든 사람들이 편히 머물렀다 갈 수 있는 카페로 개조되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해당 카페는 '서연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으니 조만간 제주로 떠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기억해 두도록 하자.


끝나지 않은 세월, <지슬>


1948년 11월, 흉흉한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오르는 제주의 사람들. 제대로 된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산 속의 비좁은 동굴 안에 몸을 숨긴다. 한편, 밖에는 폭도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즐비하고 있는데⋯


 <지슬>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비극, 제주 4∙3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부끄럽고 슬픈 우리의 역사를 처연하게 담아내면서 수많은 관람객들과 평단으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이끌어낸 영화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며 공개 당시부터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극중 인물들의 대사가 대부분 제주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표준어 자막이 함께 제공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사실 평소에 우리가 비교적 자주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제주는 여행지이거나 관광지이기 이전에 삶의 터전이라는 점이다.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행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감성에 취해보는 것도 제주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지만, 제주를 하나의 삶의 터전으로서 온전히 바라보고자 시도해보는 것 또한 제주를 느끼고 경험하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슬>은 새삼 제주가 과연 어떤 땅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주는 훌륭한 참고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주는 영화라고 감히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힐링이 필요한 당신에게, <애월>


3년 전, 제주도 애월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수현. 수현의 연인이었던 소월은 그에 대한 그리움에 잠겨 애월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현과 소월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철이가 문득 애월을 찾아오는데⋯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죽은 수현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이겨내기 시작한다.


 2019년 9월 개봉한 <애월>은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제주 애월을 배경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이다.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화는 아니지만,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감성적인 플롯으로 여러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일부 영화 팬들의 소소한 힐링 영화로 자리잡은 바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물론, 평화로운 애월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냄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애틋한 제주앓이를 유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애월의 평온한 정경은 스크린 속 제주의 아름다움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한편, 극중 등장하는 카페 '매기의 추억'은 <애월>을 비롯한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드넓은 바다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과 카페 특유의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제주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애월에 방문할 예정이 있는 여행객들에게는 가히 필수 방문 코스 중 한 곳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별로 가보고 싶지 않다고? 글쎄, 아마 <애월>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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