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by 박해경

흔들림은 늘 조용히 시작된다.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누군가와 격렬하게 다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느 날부터 일상이 예전과 다르게 무거워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속도가 느려졌고, 익숙했던 업무 문장이 낯설게 느껴졌다. 잘해오던 것들이 갑자기 버거워지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이상함을 감지한다.

20년 동안 기자로 살며 수많은 사람의 전환기를 지켜봤다. 구조조정, 파산, 이혼, 병, 은퇴. 기사로 쓰면 모두 하나의 사건이 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 이전에 반드시 ‘전조’가 있었다. 나는 늘 그 전조를 질문했지만, 정작 내 삶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피로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피로는 휴식으로 회복되지만, 이 감정은 쉬어도 가시지 않았다. 성취로 버텨온 시간들이 서서히 효력을 잃고 있다는 느낌. 잘 해내는 것만으로는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천천히 다가왔다.

사람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역할’을 붙잡는다. 기자라는 직함, 책임, 경력. 하지만 역할은 위기 앞에서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질문하는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내 삶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 때 깨달았다.

이 흔들림은 실패가 아니라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삶이 방향을 바꾸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진동이라는 것을. 문제는 흔들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외면하는 태도였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사건이 아니라 감정부터, 결과가 아니라 과정부터.

이 글은 아직 결론이 없는 이야기다. 다만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을 정확히 적어두는 일, 그것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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