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배우는 감각들

by 박해경

삶은 늘 성취로 평가되지만,

버티게 하는 것은 감각이다.


전환기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오래전에 무뎌졌던 감각들을.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 어떤 순간에 숨이 트이는지, 어떤 속도가 나에게 맞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너무 오래 잘하는 쪽에만 집중해왔다. 잘하는 것은 설명할 수 있었지만, 좋아하는 것은 늘 뒤로 밀렸다.

일은 늘 성과로 측정된다. 숫자, 결과, 평판. 그 기준에 익숙해질수록 감각은 후순위가 된다. 피곤해도 계속할 수 있고, 마음이 닳아도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견딜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방식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알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질문을 바꿨다.

“이게 도움이 되는가”가 아니라 “이게 나를 살리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많은 선택을 바꾸었다.

효율적이지만 나를 소모시키는 일, 의미 있어 보이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관계를 하나씩 정리하게 만들었다. 감각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삶의 중심을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놓는 일이었다.

기록은 감각을 회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감정은 형태를 갖는다. 형태를 갖춘 감정은 더 이상 막연한 불안이 아니다.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어디에서 무너지고, 어디에서 회복되는지를 조금씩 알아갔다.

감각을 회복한다는 것은, 세상이 달라지는 일이 아니다.

같은 하루를 보내도, 그 하루를 받아들이는 밀도가 달라진다. 무리한 일정 앞에서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지칠 때는 멈출 수 있게 된다. 삶을 조절할 수 있다는 감각은, 어떤 성취보다 단단한 안정감을 준다.

이제 나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의 간극을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는다.

두 영역이 완전히 겹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환기의 삶에서는, 그 간극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감각은 늘 조용히 돌아온다.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어느 날 문득 숨이 편해지는 순간으로. 이 글은 그 미세한 변화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삶을 다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감각을 연습한다.


삶을 다시 붙잡게 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전환기의 나는, 그것을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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