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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생각러 Feb 09. 2023

슬램덩크 열풍과 선택적 애국, 아슬아슬한 경계(노재팬)

한국인이 한국에서 일본문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것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돌풍, 26년만의 귀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개봉 한달차, 관객수 240만을 돌파하면서 조용한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슬램덩크에 푹 빠져 살았던 한 사람으로써 개봉하자마자 첫 주에 극장으로 바로 달려가서 봤는데, 예상보다 대중의 반응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슬램덩크의 흥행을 이끄는 원동력은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2020년대의 3040 남성들이며, 이들의 과거 학창시절의 추억에 빗대어 '노스탤지어'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엔터시장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영화 흥행과 더불어 기존 만화책, 농구용품 등 관련 제품들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슬램덩크 관련 키워드가 '추억 소환' '열정'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등 이지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글을 풀어보고자 한다.



'노재팬'에서 좀 더 자유로운 슬램덩크


슬램덩크 돌풍이 반가우면서도, 내심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슬램덩크가 일본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입소문이 난다는 것에서 이제 일본만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좀 부드러워진건가 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전에도 귀멸의 칼날, 너의 이름은 도 히트하긴 했다)

2004년 일본 대중문화 전면개방 즈음만 해도 일본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개방이 되지 않았기에 불법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고, 음지에서 소비가 이뤄지기에 일본 대중문화는 선정적이고 유해성이 짙고, 우리 청소년 의식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컸다. (실제로 선정적인 작품이 많기도 했다. 청소년층이 많이 보는 '망가'에 그러한 표현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됐으리라)

물론 90년대는 1930년대 후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으로부터 불과 5,60년이 겨우 지났을 즈음이고 그때만해도 지금처럼 우리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파급력을 키우기 이전의 시절이라 우려하는 분위기가 더 컸다.


대중문화 개방 20주년을 앞둔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일본문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것은, 다른 문화를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품이 든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매국노' 'X바리'란 비난을 들을 수도 있는 우려를 감수하면서,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능동적으로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다. 문화를 소비하는 자유를 가진 개인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역할이 우선시되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문화 소비는 어느 정도의 편견에 맞설 각오가 없다면 섣불리 도전하기가 어려운, 진입장벽이 다소 높은 분야이다. 아니면 이미 소비하고 있더라도 ‘굳이’ 취향을 이야기했다가 받지않아도 될 편견을 받게 된다. (오타쿠라던지)


그런데 슬램덩크는 왜 돌풍일까? 그것은 소위 말하는 '왜색'이 거의 없는, 국적은 차치하고 <젊음과 열정, 투지, 추억 등>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실 슬램덩크는 현지화가 완벽한 캐릭터의 이름, 학교이름이나 지명 등도 모두 한국화가 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일본인 인것을 모른다면 만화 자체로만 놓고 봤을 때 '일본'만화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인간의 보편성을 아우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 - 에서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이 국가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슬램덩크 보러가자라고 했다가 '오타쿠야?'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여자친구가 영화를 보고나선 푹 빠졌다"는 커뮤니티 반응이 한둘이 아닌 것을 보면, 문화 콘텐츠는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왜색이 옅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 그래서 '노재팬'에서 좀 더 자유로운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선택적 불매, 그리고 선택적 애국  


불과 3-4년전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돌이켜보면,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 제한을 필두로 한 무역분쟁이 국민감정으로까지 번져 일반 소비재 브랜드에도 영향이 미쳤을 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취지는 좋았으나 방향이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대표가 망언을 한 유니클로는 징벌적 대응으로 불매를 했다손 치더라도 편의점에서 쉽게 보이는 일본산 맥주, 도요타 자동차, 생업을 하는 일식당 등이 '노재팬'의 타깃이 되어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과 조롱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일본여행을 SNS에 올린 연예인은 대중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소비는 개인의 선택이다 vs 나라가 어려운데 경제적 보복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라는 양측 프레임이 팽팽했다. 개인적으로 핵심과 팩트는 전혀 못짚는 집단적인 반강요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도 '선택적 불매운동'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유니클로는 안 되지만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은 여전한 인기였다. 불과 몇년 뒤 일본 인기캐릭터 피카츄가 그려진 포켓몬 빵은 웃돈을 주고 사고팔만큼 신드롬급의 인기를 구가했다. 코로나 이후의 지금은 어떠한가. 엔저인데다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일본여행 수요는 폭발적이다. (일본 입/귀국 공항 대기줄은 3시간 전에나 가야된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난리이고, SNS에는 일본감성 맛집, 숙소 키워드가 심심찮게 보인다.


우리는 선택적 애국을 한다. 주관보다는 시류에 편승한 사회적 분위기, 집단행동으로 보여지는 반강요적 애국. 물론 개인의 신념에 따라 불매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매운동 이라는 사회적 흐름-안전한 다수-에 속함으로써 본인의 정당성과 애국심을 드러내는 비자발적 행동이기도 했다.


다양한 재화와 콘텐츠가 오가는 글로벌 시대, 우리는 개인의 이익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적 애국을 한다.


(다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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