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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ra May 22. 2022

2022년의 전쟁, 그리고 춤

 

 전쟁이란 단어가 주는 참혹성. 너무도 무겁고, 너무도 어둡다. 그에 반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니 어찌 보면 그저 무엇도 할 엄두가 안 날 뿐인 자신의 마음도 참혹했다. 지금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참혹성에는 비할 바가 없는, 참 위선적이면서 가소로운 참혹함. 나는 그저 자신의 생계가 급하고 바빴다. 당장 아픈 우리 냐옹이의 병원비와 나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해줄 커피값을 버는 게 우선이었다.  

그동안 지구 다른 곳에선 또다시 누군가의 목표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었다. 일상을 잃고, 집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피를 흘리고, 누군가를 잃고, 자신들의 생명을 잃었다. 매일같이 들리고 보이는 전쟁에 관한 뉴스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심어놓은 슬픔과 무기력함을 애써 외면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위선적인 자기 위로를 하며. 얼마나 편리한 핑계인가,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은.  

 

그러던  일거리를 찾아 체크해오던 커뮤니티에서 반전 퍼포먼스 코리아라는 행사 공고를 보았고, ‘최소한의자신이   있는 노력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코로나 확진 이후로 심하게 약해진 체력에 제대로 된 연습을 못한 지 3개월도 넘었고, 여전히 10분 격렬한 움직임도 버거운 상태라 망설였지만 Dancing polar bears의 목표의식은 뚜렷하다. ‘Make the world better’

‘더 나은’ 세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다른 의견들이 있을 것이고, 나에게 다른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더 낫지는 않은 세상일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운 문장이지만, 전쟁이 일어나는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는 세상에서는, 그 전쟁이 멈춰진 세상이 대다수 생명들에게 더 나은 세상일 것이다.


 2013년부터 판데믹 직전인 2019년 12월까지 나는 독일에 있었다. 뮌헨과 뒤셀도르프 쾰른, 카셀을 거쳐 Universität der Künste Berlin(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안무 공부를 시작하며 베를린에 정착했다. 지난 십여 년간 독일은 내게 태어난 한국보다도 ‘집’처럼 느껴지는 곳임과 동시에 너무나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곳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로 독일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에 대한 반성과 보상을 하려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강하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수시로 겪었던 곳이 독일이지만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로 너무나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반전시위를 만들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위해 기부를 하고 난민들에게 침대를 내어주고, 너무나 많은 예술가가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을 대가 없이 세상에 내보냈다. 한국에서 인스타와 페이스북으로 베를린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의 이런 행사소식들을 보면서 아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나. 나는 말로만 번드르르하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며 그저 핸드폰만 들고 스크롤만 내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게, 솔직한 마음으로 부끄러웠다.



 1980년대 대한민국 서울 태생인 나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다. 이미 옅어질 대로 옅어진 그 흔적과 미디어, 예술작품, 책들을 통한 간접경험만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상황들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우리라 생각하고 예상은 할 수 있어도, 실제로 전쟁의 상황을 온몸으로 받고, 피부로 느끼고, 전쟁터의 냄새를 맡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다 느낀다.



 2010년대 초, 존 레넌과 오노 요코(그녀에 대한 많은 논란과 나의 개인적인 의견들은 일단 뒤로 밀어 두고)가 NO WAR라고 적힌 간판을 들고 있는 흑백사진이 프린트된 포스터가 몇 년간 방 안에 있었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그 사진에 끌렸고 그 사진이 전하는 단순하지만 명백하고 강렬한 메시지에 매료되었다.

 ‘WAR IS OVER’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2020년대의 인류가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Great, Putin. 그는 내 예상을 뒤집는 존재였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멀리서 가까이서 들리는 포탄 소리와 총소리, 비명이 들리고 주위의 가깝고 먼 사람들이 매일같이 죽고 사라지는. 음식을 구하러 가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고, 평범하게 학교에 가거나 일하거나 산책하러 나가고 음악을 듣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니 그런 걸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한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평범한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어느 정도인가. 내가 원한 건 아주 짧은 순간만이라도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그 순간들을, 그 시간과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봐 주길 바라는 거였다. 세상에는 그걸 느끼는 순간 나보다도 더 많은 일들을, 더 큰 일들을 해 줄 수 있는, 기꺼이 그리해줄 사람들이 수도 없이 있고, 그러지 못한다 한들 모두가 보내는 응원이 메시지는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달해 줄 테니까.


 이번 반전 퍼포먼스에서 공연한 <LISTEN TO THIS>는 판타지다. 전쟁을 직접 겪어본 적도, 그 안에 잠시라도 있어 본 적도 없는 내가 만든 작품이기에 판타지다. 그래서 부끄럽고, 그래서 세상의 많은 평화를 위해 직접 뛰어들어 희생하고 봉사하는 많은 사람을 깊은 마음으로 존경한다.




 이 행사를 주최한 분들과 임밀감독님, 음향팀, 예술가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이런 취지의 행사를 발 벗고 나서서 기획한 많은 숨은 공로자들.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분들 덕분에, 내가 사랑하는 춤을, 무용을, ‘NO WAR’의 메시지를 담아서 공연할 수 있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역설적이게도 전쟁의  끗조차 경험하지 못한 내가 감히 표현하려 한 ‘NO WAR’.


 2022년 5월 15일, 서울 아르코 예술극장 앞에 모여 같은 평화를 위해 움직인 예술가들과 이를 바라본 사람들의 마음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와닿기를.


 https://youtu.be/n6klI0cQ2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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