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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ra Dec 09. 2022

눈이 왔고, 뿌꾸는 소풍을 떠났다


뿌꾸가 날 쳐다볼 때의 눈빛

그 커다랗고 투명한 눈의 반사

촉촉한 콧잔등

가늘고 길게 난 눈썹과 콧수염에 닿을 때면 눈을 깜빡거리던 모습

커다란 두 눈 사이로 길게 솟아오른 약간은 왼쪽 눈 쪽으로 쏠린 하얀 털의 무늬

조용한 숨소리

목소리 보들보들한 털의 촉감

따뜻한 온기

내 다리사이로 들어와 자고 있을 때의 무게감

말랑말랑 따끈따끈 폭신폭신 보들보들했던 몸의 느낌

그 안에서 느껴지던 두근두근 심장박동

뿌꾸가 있을 때의 공기

뿌꾸가 만들어낸 가족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게 너무도 생생해서

이제는 그 모습이 여기에 없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어느 생명체든 어느 순간에는 수명을 다 하고

떠나가는 자도 남는 자도 모두가 이 생명의 순환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받아들이려 한다.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2013년 11월 뿌꾸가 생후 한 달, 임보 되어있던 동물병원에서 우리 집으로 오던 날도 눈이 왔고

뿌꾸가 우리 집을 떠나 하늘나라 소풍을 간 2022년 12월 7일도 눈이 왔다.


아침까지 온 식구가 일어나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듯, 새벽에도 숨이 가빠졌었지만 금방 안정을 되찾았던 아가는 잠에서 깬 부모님의 아침인사를 들은 지 한 시간이 되지 않아 한 동안 가쁨 숨을 몰아쉬고는 머리를 내 오른손에 기댄 채 깊은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엔 집에 없던 언니의 꿈속으로 찾아왔다.

뽀얗고 깨끗한 모습으로 마치 인사를 하고 싶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뿌꾸가 숨을 거둔 내 잠자리의 한 구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미어지는 걸 느낀다. 그 순간의 모습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아서. 한 번이라도 더 안아줄걸.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 줄 방법이 있었을 텐데.


자주 흐르던 눈물이 멈추고 나서도 가끔은 눈물이 날 것 같다. 가끔은 못 견디게 보고 싶고 가끔은 그 마지막을 더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계속 떠오를 것 같다.


뿌꾸는 내가 살기 위해 입양해 온 아이였다.

삶의 가장 괴로웠던 순간에 희망을 얻으려 데려온 작은 생명이었다.

그리고 뿌꾸는 진정으로,

나를 구해줬다. 우리를 구해줬다.


인스타 좋아요 천 개를 누르게 만드는 미묘는 아니었지만 알면 알수록,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그 애교와 배려심과 엉뚱하게 귀여운 행동들, 특유의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들과 영특함에 반하게 만드는 그런 아이였다.

소중하고 소중한 작은 꽃송이 같은 생명체.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면 방에서 나와 인사라도 하듯 쳐다보며 ‘냥’ 소리를 내고, 샤워를 하시는 동안 화장실 문 앞에 앉아 기다리고, 침대 옆에서 같이 엎드려 티브이를 보다가 안아달라며 앞발로 얼굴을 툭툭 건드리는.

주위에선 믿지 않았지만 밤마다 아버지를 깨워서 잠을 못 주무신다길래 ‘뿌꾸야, 오늘 밤에는 아빠 깨우지 말고 언니 깨워~ 알았지? 언니가 놀아줄게’ 했더니 그날은 정말로 아버지에게 가는 대신 내 얼굴 앞에서 특유의 짧고 귀여운 끙끙거리는 ‘냥’ 소리를 내며 깨우던.


조용한 집 안에 언니가 결혼해 출가하고 내가 외국생활로 오래 자리를 비우는 동안에도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해 준 너무도 고마운 아이였다. 아버지는 뿌꾸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감정표현이 매우 서툰 분이 뿌꾸 얘길 할 때면 눈시울을 붉히신다.


분명한 건 우리 가족 모두 뿌꾸를 아끼고 예뻐하고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많이 그리워하고 그리워할 것이고.


자신이 필요할 때에만 신을 찾아 기도를 하는 종교제도에 회의적인 나지만 뿌꾸가 우리 곁을 떠나간 후에는 신을 찾아 기도했다.

우리 뿌꾸, 주위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우리 모두에게 고마운 고양이계의 천사 같은 아이 - 신의 곁에서, 천국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머무르게 해 달라고.




가족들에게 안겨있고, 기대어 있고, 다리 사이에서 자는 걸 매우 좋아하던 아가. 우리와 생을 함께해 주고 행복을 나눠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꼭 천국에서 만나자. 매일매일 안아줄게, 매일매일, 이번 생에 못 다해준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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