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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ra Dec 26. 2022

카푸치노


 노란 조명이 비추는 짙은 원목 테이블. 그 위의 하얗고 넓은 둥근 커피잔. 그 안에 담인 짙은 초콜릿색의 커피와 몽글몽글 하얀 거품이 어우러져 잎사귀를 만들어낸 카푸치노.

 짙은 향만으로도 그 카푸치노는 고소하고 깊으면서 부드럽게 씁쓸한 맛이 날 것 같았다. 보이는 색과, 풍겨오는 향기만으로 이미 입 안에 머금고 혀에 닿는 맛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맛을 보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아닌 누군가의 오더로 인해 만들어져 이 테이블 위로 전달된 그 카푸치노는 나에게 소유된 것이 아니었다.


 ‘한 입 마셔봐도 돼요?’

 유혹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예상했던 맛.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무의식의 인식.

 단순히 맛을 보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 카푸치노를 한 입 맛보는 것으로, 조금 전 이 짙은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액체를 주문하고 지금 이 앞에,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이 테이블 위에 존재하게 한 소유자. 그가 가진 것을 나누어 받고 싶었다.

 마치 그의 날숨이 커피 안에 섞여 들어가 한 입 머금는 순간, 들숨과 함께 내 안에 들어오는 것처럼.


 눈빛에 다정함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눈빛을 보다 잠시 그가 하는 이야기들을 듣지 못했다. 잠시 눈을 돌린다. 스스로의 의식을  다정함으로부터 애써 끌어내린다.


 어느 순간 느껴진 땀냄새. 그제야 눈에 들어온 목덜미의 몽글몽글한 땀방울들. 더웠구나.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녔구나. 그렇게 그의 땀이 흥건해질 정도로 무언가에 쏟아부었을 하루가 느껴졌다. 땀냄새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득하게 농축된 향수인  묘하게 기분 좋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의 무의식이란 건 굉장하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감정을 나타내는 표식들이 이렇게나 뚜렷하게. 느끼는 향기에 대한 감각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들에 대한 감각을, 이토록 찬란하게 바꾸어놓을 수 있다니.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농담처럼 한 마디를 던진다.

 ‘상대역은.. 찾아보세요. 사육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상대로

 ‘사육하고 싶은 상대요?’

 그럼, 당신이 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혹여나 이 생각이 입 밖으로도 튀어나오지 않게 입 안에 머금고 다시 삼킨다.

 ‘음.. 그래요 뭐. 연기니까’

 ‘아니, 진짜 사육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요’

 피식. 연기하실래요? 지금  앞에 계신 분이요. 차마 내뱉을 순 없어 머릿속으로대답을 하고 입으로는 그저 웃는다.


 ‘사육  모르겠지만.  사람을,  존재를 앞에 두고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툭툭 져대는 뜬금없는  즐거운 질문들을 받으면서.


 ‘오감 중 하나를 포기한다면 뭘 포기하겠어요?’


 그렇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느낌은 욕망이 아닌, 갈망이었다. 부재되어 있다 느끼던 부분들을 채워주는 존재가 그곳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존재의 존재에 대한 갈망. 만질  없다 해도, 소유할  없다 해도. 그곳에 존재하길 바라는 갈망.


 색과 향기만으로도 그 맛을 느끼는 듯했던 카푸치노처럼, 가까이서 바라보고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체취를 느끼는 것만으로 그 내면을 느끼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그 향기가 채운 공간 속에 같은 시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서 무언가를 나누어 받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카푸치노 잔은 비어져있었다. 조금씩 커피잔 바닥에 남아있는 우유 거품들과 약간의 갈색을 보며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이제 10분 후 마감이라서요’


 양해를 구하는 직원분에게 끄덕이고는 짐을 챙긴다. 다시 한번 문득 눈에 들어온 카푸치노 잔안의,  아름답고 향기로웠던 액체의 남아있는 흔적들을 면서.  향기가 얼마나, 기억 속에,   모금이 타고 내려온 나의 몸과 내가 들이마신  속에 남아있을  있을지를 생각한다. 조금만  음미할  있을까.


 그저 잠시 동안의 공유만으로, 충분하다. 욕심이 나지 않아서 행복하다. 지금의  카푸치노  잔이 전해준 순간들과  향을 온전히 즐길  있어서. 그 향과 색과 맛을 닮은 사람과 함께.






 업데이트 : 여전히 그를 만날 때마다 두근거리는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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