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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ra Jul 13. 2023

너의 분노가 지나간 자리


 이건 단순히 목이 졸린 흔적이 아니다. 이건 어느 순간 너무도 강렬했던 분노의 흔적이다. 한 사람의 처절한 감정의 폭발이 남긴 자국이고, 앞으로 안고 가야 할 기억의 모습이다.

 30년을 넘게 서로 다른 생을 살다 만난 두 개인이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의 하나고, 그 가능성으로 도착할 수많은 마지막의 한 예시이다.











 






 뭐가 널 그리도 화가 나게 했을까. 너에겐 무엇이 사랑이었고 무엇이 분노였을까.




 신고를 하고 경찰을 기다리며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우습게도 ‘나에게는 ’목조르기 악귀’가 붙어있나보다‘였다.

 데이트폭력이 흔하디 흔한 세상이 되었다 한들, 독일에서 한 때는 그저 수줍은 대학원생인 줄 알았으나 어느 순간 강렬한 악마의 모습을 드러냈던 사람에게 처음으로 목이 졸렸던 그 후로, 6년..? 7년..?

 한 없이 귀엽고 선한 줄만 알았던 누군가에게 다시 목이 졸렸다. 이런 경험이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정말 귀신이라도 씐 게 아니라면. 아님 나에게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특수한 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차이가 있다면 첫 번째 사람은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한 ‘악’ 그 자체인 사람이었고,

 이번의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선함을 갖고 있지만 어느 순간 악귀에 씌인 듯 눈빛마저 뒤바뀌어버린 사람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사람 모두, 한 때는 내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독일에서 룸메이트로 만나 매일같이 꽃을 사주고 아침을 만들어주며 구애하던 그 ‘악’의 존재를 만나, 로맨스인 줄 알았던 장르가 테드 번디의 다큐멘터리처럼 변하기 시작한 건 한 달도 채 안 돼서였다.

 내가 생각나서 샀다던 선물을 수줍게 건네던 그 존재가 멋대로 가져가버린 귀중품들을 돌려받기 위해 찾아간 방에서, 그는 내 목을 조르며 온갖 욕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가 만나기 싫다던, 나와는 잠깐 인사를 나눈 적 밖에 없는 친구들과 멀어진 것은 내 탓이었고, 일하던 곳에서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트러블을 일으켜 잘린 것도 내 탓이었고, 그가 내지 못한 월세를 내 돈으로 메꾸며 살던 집의 집계약이 연장되지 않은 것도 나 때문이었다.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의 원흉이 나였다. 그는 내 목을 조르지 않았고 나는 혼자 넘어져 다친 것뿐이라 했다. 멋대로 가져갔던 내 물건들과 빌리고 갚지 않은 돈들은 모두 나의 선물이었다 했다. 그게 그가 한 말들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이해할 수 없었던 너무나도 많은 행동들과 말을 이해하기 위해 온갖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몇 달의 시간이 흐른 후 깨달았다. 나는 결코 그 존재를 이해할 수 없음을. 그 모든 걸 이해하는 건 오직 나도 그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지만 가능하다는 걸.









  며칠 전 내 목과 기억에는 다시 이 선명한 자국이 새겨졌다.

 그 사람은 나 자신이 ‘악’이 되어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정말 이게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그 순간의 모습은 지금까지 봐 온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왜’를 질문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죽일 듯이 상대의 목을 조르지는 않는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시기가 이런 형태로,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는 걸 몰랐을 뿐.


 그래서 그런지, 처음의 경험에선 한 동안 내가 사는 집 건물을 찾지 못해 매일같이 같은 길을 몇 번이고 지나치고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던 정도의 충격에서 꽤 오래 벗어나지 못했던 자신이, 이번에는 놀랄 만큼 충격을 받지 않은 모습에 스스로가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할 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

 이번엔 왜 내 목을 졸랐는지는 알 것 같기도 하고,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의 마음과 기억의 형태를, 구조를, 이해함과 동시에 이해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다만, 그가 말했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제 새벽엔 꿈에서 나를 보며 욕하는 네 모습에 놀래서 깨고

 오늘 저녁엔 문득 지금의 상황을 깨닫고는 몇 년을 안 먹던 공황장애 약을 먹었어.

 그저 다정하고 까불 하던 내 남자친구가 너무 그립고

 그 때로는 절대로 못 돌아갈 걸 알아서 더 힘들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보고 싶은데

 사랑했던 사람 곁이 지금 나에겐 가장 안전하지 않게 느껴지는 곳이라는 사실이

 그곳에서 편한 마음으로 이전처럼 지내는 건 불가능할 거란 사실이

 꾸역꾸역 예전처럼 돌아가려 해 본다 한들 앞으로는 더 안 좋은 일들만이 계속될 거란 사실이


 너하고 나이 먹고 농담 따먹기나 하며 방귀 뿡뿡 뀌고 오손도손 늙어가는 미래를 꿈꾸기도 했던 나는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더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공간이 되었던 그곳에서 너하고 있는 시간들이 제일 행복했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여기 이 집의 좁고 어두운 방 안으로 돌아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만 하고 있더라. 순식간에 모든 게 다 바뀌었더라고.


 내가 그리운 ‘너’는, 내가 그리운 ‘그때 그’ 순간들은, 이제 여기에 없어. 어디에도 없어.

 그래서 더 힘들어.

 그래서 나는 네가 내가 순간적으로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앞으로도 다시는 그런 분노에 휩싸인 악의 모습이 아니라, 항상 봐오던 사랑스런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줬음 좋겠어. 이제 술은 정말 그만 먹었으면 좋겠고. 괴로워도 술에 기대지 말고 맑은 모습으로 강하게 버텨줬으면 좋겠어.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래줬으면 좋겠어.


 너를 정말 많이 사랑했고, 네가 너무 그립고, 그리운데 볼 수가 없어서 괴롭고.

 너한테 화가 나지도 않고, 네가 정말 잘 되길 바란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너무 괴로워서 의미 없이 끄적여 봤어.

 잘 지내, 많이 사랑했던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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