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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떰띵두 Mar 30. 2024

내 것이 니것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휴대폰 카메라를 키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엔 아이들 사진 찍는 것이 거의 전부였던 휴대폰의 카메라가 지금은 이것저것 나름 조목조목 쓰임새 있게 적절히 잦은 빈도수로 나의 일상에 함께하고 있다.

글쓰기를 하면서 좀 더 자주 많이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게 되었다.

그리고 포토샵이 초보자 수준으로 접어들면서 내 휴대폰 카메라는 더 열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목적물이 생기면 휴대폰을 꺼내 들고 목적물을 찍는 것에 몰두했다.

별 실력이 없어도 카메라의 쓰임새를 제대로 알지 못해도 요즈음의 기계는 워낙 그 자체로도 뛰어나다 보니 별 어려움 없이 찍고 그것을 살피고 활용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밤하늘 달빛이 너무 고와 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 들고 담아보려는데 우연히 카메라의 화면이 어마무시하게 늘어나는 즉 확대되는 걸 알았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낼 때마다 화면 속 물체는 점점 커져서 지금 내가 보는 곳이 어디인지 찾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되었다.

결국 달빛이 고와 담아 두려던 달님의 사진이 고운 달빛과는 무관한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보기에도 족히 충분한 그런 사진을 찍게 되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웠다.

이것으로 지금 보이는 저 달의 표면을 보게 되다니!

나는 그냥 휴대폰 카메라의 선명도가 예전의 것보다는 참 많이 좋아졌다는 정도만 알고 느꼈었다.

그냥 막연히 예전에 비해 너 다섯 배정도 확대되는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앎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지금 내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의 카메라는 달표면을 찍어주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왜 여태 나는 이걸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모를 수밖에.

한 번도 휴대폰카메라의 다른 쓰임새를 생각하거나 눈앞의 목적물 말고는 찍어본 일이 없었고 다른 것을 굳이 찍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관심했고 쓸모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하니 이 놀라움을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못하고 나 혼자 몰래한 이 흥분을 속으로만 다독이고 가라앉히며 일상의 평온함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렇게 내가 익히 알고 있음에도 인지하지 못한 변화한 무한한 확장에 대해 기대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그것을 사진 찍고 포토샵으로 편집하고 카페에 게시글로 올려놓는 것이 일상으로 자리 잡을 때쯤 나는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우연히 포토샵의 기초기능에서 내가 좋아하는 기능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세밀하게 그 기능을 잘 사용하고픈 마음이 들었고 방법을 모색하던 중 애초에 목적물의 사진을 선명하게 잘 찍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아는 것이 적으니 시행착오가 잦지만 내 최대의 장점은 스피드 아닌가 말이다.

수없이 반복해 본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목적을 두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해 보고 그것을 최대한 근접하게 실현해보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해보려고 한다.

한번 해보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걸 알아야 다시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다 보면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습관 덕에 포토샵도 마찬가지였다.

빠른 속도로 아는 정도 내에서 그냥 했고 그러던 와중 '야 이거 괜찮네!'싶은 기능을 발견한 것이고 하다 보니 애초의 목적물의 선명도가 필요했고 그 선명도를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이미 내 휴대폰 카메라에도 차고 넘칠 만큼의 다양한 고도화된 전문가 수준 기능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야 내 손에 쥐고 다니던 내 휴대폰 카메라에 좀 더 관심이 생겼다.

전화를 걸고 받고 데이터를 저장하고 소통하고 기사검색하고 뭐 그 정도 수준인 휴대폰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휴대폰이 비쌀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인정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휴대폰 카메라의 이 다채로운 기능들을 가 다 익히고 사용할 순 없지만 최소한 지금 나는 내가 필요한 목적물의 원하는 선명도를 찾아 찍는 법에 대한 정도는 찾아내었음이다.

또 이렇게 뭔가를 내가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그때그때에 필요한 시점에 나는,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만한 것을 그런 식상한 것을, 인생에서는 처음 보는 신기방기한 것들을 몹시도 익숙한 이 세상에서 발견해 내고 그것을 놀라워하고 혼자 신기해하고 기뻐 날뛸 것이다.


이처럼 뭔가를 하다 보면, 뭔가를 살피다 보면, 뭔가를 깨우치다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전부 내 것이다만 이런 자잘한 것조차도 엄마는 것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득 담게 되는구나!

별거 아나듯한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엄마는 뭐랄까 경험치이고 지혜랄까, 뭐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자질구레한 경험치가  것이 될 수 있다면 너는 엄마보단 조금은 더 현명하고 유연하게 융통성 있게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

가끔은 이런 욕심이 잔소리가 되어버리지만 그래도 엄마는 별 꺼 아닌 휴대폰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하는 자질구레한 이 깨달음을 너에게 전하고 싶다.

사는 것에는 언제나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이란게  있으면 그 삶이 그리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단다.

그런데 그 기준이란 것은 원불변이 아니라서 조금 동적이어야 한단다.

그렇다고 이기적이거나 편의를 위해 변덕스럽게 바뀌어서는 안 되지만 그 기준이 너의 강박이 되어서는 안 된단다.

그러하기에 기준도 점점 성장해야 하고 그 기준도 다양해서 니가 필요시 시의적절하게 뽑아 쓸 수 있어야 한단다.

휴대폰 카메라의 조리개를 조이고 넓히듯 니 삶의 기준도 목적물에 따라 그렇게 포커스를 달리 할 만큼의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어떻게 보면 앞뒤 맞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적인 태도일지 모르지만 사는 것은 한결같음과 변화무쌍함이 공존해야만 하는 것이란 걸 알고 시작하면 좋겠구나.

그래서 살면서 니가 찾아내게 되는 너의 가치관, 사명, 목적 뭐 이런 것들이 절대적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단다.

세상에는 사는 동안 절대적인 것은 어디에도 없단다.

절대적인 것은 없지만 절대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단다.

이러한 엄마의 깨우침이 너의 것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은 어쩔 수 없구나.

그렇지만 엄마는 이런 엄마의 욕심도 엄마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으로 위로받는다.

엄마가 얘기했었지?

너는 엄마와 아빠보다 진화되어 태어난 생명체란 걸 말이다.

엄마는 오늘도 이 자잘한 깨우침이 니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욕심을 내보게 되는구나!

아들! 몸도 마음도 정신도 건강하게 잘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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