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드려라!

엄마의 언어 11

by 떰띵두

내가 살던 마을에는 편의점이나 슈퍼, 마트 이런 게 없었다.

매월 1일, 6일 자에 동네 장터에서 오일장이 열려 이날은 동네 전체가 무슨 행사가 있는 것처럼 시끌벅적했었다.

이날은 어른도 아이도 몹시 신나고 즐거운 날이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날은 놓치지 않고 하루에 세네 번은 장터구경을 다녀왔었다.

심부름으로 한 번가고 엄마랑 장 보러 한 번가고 친구들이랑 구경하러 한 번가고 한 번은 시장이 파할 즈음에 혹여나 싶어 한 번 더 둘러보러 못해도 그렇게 세네 번은 족히 장터를 드나들었다.

어른들은 이날이 동네 회식하는 날 마냥 장터에 차려진 국밥집에서 얼큰하게 취해서 동네를 이 집 저 집 돌아다니셨다.

그리고 우리 마을 장터의 또 다른 숨은 기능은 마을사람들에게 세상을 보는 확대경 같은 장소였다.

무슨 뜻일까?

그것은 바로 장터에서 가끔 한 번씩 열렸던 문화공연이 있었는데 이 날에는 서커스 공연, 변사가 대사를 하는 연극, 각설이 공연 같은 걸 했었다

나는 몰래 천막 안에 숨어 들어가 몇 번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찬 신기하고 황홀한 순간이었다.

내가 아는 세상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자라나고 있었고 그것이 나는 참으로 경이롭게 여겨졌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참 바보 같았다.

동네 친구들은 나와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나는 대학교 아니지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라디오란 걸 몰랐고 카세트 이런 것도 머릿속에는 없었고 축음기나 전축 혹은 라다오에서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없는데 동네친구들은 내가 아는 내가 경험한 문화와는 다른 문화세계를 경험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하게 생각된다.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을 나는 자동차 운전 중에 라디오를 켜고 운전하는 것이 몹시도 성가셨었다. 음악소리가 시끄러운 소음과 동일했으니 말이다.

대학생활동안 노래를 즐겨하는 친구들과 가까이 지낸 덕분에 노래방도 많이 가고(듣는 게 전부였지만) 친구들의 기타 동아리방에도 수없이 드나들면서 음악소리에 많이 익숙해졌다 싶었어도 일상생활 속에서 누군가처럼 음악이 필요한 순간은 지금도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결핍이었을 텐데 단 한 번도 결핍이라 여기지 못한 것은 몰라서 인 걸까 아님 필요치 않아서일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무슨 50년대 오지마을에서 산 듯하지만 나는 도심지 가까운 시골마을 면소재지에서 살았음을 다시 한번 밝혀두고 싶다.

서두가 너무 길었지만 내가 하고픈 얘기는 지금부터이다.

이런 곳에서의 어린 시절을 아니지 결혼 전까지 살았으니 31년을 살았다.

31년 동안 크게 변화한 게 없는 동네였다.. 변화가 없기는 지금도 매 한 가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큰 도로가 생겨나고 24시 편의점이 있는 걸 보면 엄청난 변화인가 싶기도 하다.

이런 곳에 오일장이 열리기까지 생필품이나 우리들의 천국이 되어 줄 수 있는 곳은 문방구와 식품점 그리고 동네어른이 운영하던 점방(만물상) 한 곳이 전부였다.

그중 나에게는 집에서 가까운 점방 출입이 좀 더 잦았지 싶다.

동네 어른들의 아지트였기도 했기에 가끔은 아빠를 데리러 가끔은 엄마를 데리러 또 가끔은 두부를 사러 막걸리를 받으러 과자를 사러 때로는 그냥 할머니한테 뭐든 한번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하여 아무 용건도 없지만 있는 듯 만들어 점방을 내 집 드나들 듯하였다.

점방에는 껌도 있었고 새우깡도 있었고 막대사탕도 있었고 아이스크림 풍선 뭐 이런저런 너무 신기하고 먹고 싶은 것들이 꽤 있었다.

점방에 들러 용건 없이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물끄러미 진열대를 쳐다보고 서 있으면 할머니가 어떤 날은 거기 있는 막대사탕 하나 먹어라 하거나 거기 라멘땅 하나만 먹어라고 얘기하셨고 그 참에 ‘감사합니다’ 인사드리고 고민고민해서 하나 들고 나와서 동생과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생각하면 묵언의 시위였지 싶기도 하다. 과자 주실 때까지 안 갈 겁니다.라는

이렇듯 동네 점방은 나에게는 내 삶을 충족시켜 준 보물창고였었다.

그렇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묵언의 시위는 점점 없어졌지만 내 인생에서 이 점방은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다.

그렇듯이 우리 집에서는 별난 음식을 하거나 출세한(은행원) 큰오빠가 집에 오랜만에 오는 날이면 맨 먼저 그 점방 이모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엄마는 데리고 가셨다.

그걸 보고 자란 덕에 나는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다.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듣고 자라서 자연스레 기억하게 되었다.

혹 나가 살더라도 집에 오면 엄마가 있던 없던 점방 이모할머니께 인사 챙기라던 얘기.

그 덕에 직장을 다닐 때도 결혼을 하고서도 간간히 동네 어른들 술 받아 드시라고 점방 이모할머니께 지금 말로 선결제 해두곤 했었다.

그러면 그다음 날부터 동네 전체에 소문이 쫙 나있다. 삼동댁이 누구가 얼마나 대단하고 대견한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얘기들로 지나가는 객꾼도 알만큼 말이다.

그리고 이 소문은 꽤 오랫동안 버티다 다음 선결제가 있을 즈음에 소리가 잦아들게 된다.

그렇게 일 년에 한두 번 많으면 서너 번의 선결제로 동네 제일가는 효자 효녀로 등극했고 동네 제일 잘 나가는 성공한 아들 딸이 되어있었다.

그 덕분에 내 기억에는 언제나 동네에서는 우리 집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나 역시 동네에서는 꽤나 귀한 대접을 받으며 내가 참 잘난 줄 알고 자랐다.

그래서일까 나름 꽤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라났지 싶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세상 사는 것에 나름의 묘수를 전수해 주신거란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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